아랍인과 유대인이 결혼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몇년 전 어느 신문에 실감나는 스토리가 실린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예루살렘 대학에 다니던 팔레스타인 남학생과 유대인 여학생이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결혼을 집안에 알릴 수가 없었다. 특히 유대인 여자 쪽이 고민이 많았다.
생각 끝에 이 이스라엘 여학생은 미국에 유학 간다고 텔아비브에 있는 부모에게 말하고 그 후 다시 미국 남자와 결혼했다고 속였다. 이들은 고향 부모에게 편지 보낼 때는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거기서 다시 겉봉투를 미국 주소로 바꾸어 발송하는 방법을 택했다. TV 뉴스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관계가 많아 아예 TV 없이 살기로 합의했다. 지금도 부모들은 사위와 며느리가 미국인인 줄 알고 있다고 한다. 이 스토리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결합하고 싶어도 주변에 장애물이 많아 화해하기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옛날부터 불구대천의 원수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유대왕국은 1세기께 로마제국에 의해 패망했다. 그 후 유대인은 뿔뿔이 흩어져 유럽으로 흘러 들어갔고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아랍인 95%, 유대인 5% 정도의 인구비율을 이루었으며 서로 평화스럽게 지냈다. 그러나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 하여 가는 곳마다 악마 취급을 받았으며 그 설움과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스라엘 국민은 ‘쉰들러 리스트’의 유대인이 아니다. 가련한 피압박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막강한 군사력을 휘두르는 압박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요즘 팔레스타인 사태가 최악의 길을 걷고 있는데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나치군 철모를 씌우면 너무나 비슷한 장면이 많다. 이들이 팔레스타인 데모대를 진압하는 광경은 유대인의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나치가 진압하던 잔인한 자세를 연상케 한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눈을 가린 채 수갑을 채우고 대규모로 연행하는 장면, 용의자를 현장에서 권총으로 사살하는 장면 등은 "사람이 저렇게 독해질 수도 있구나" 하는 실망감을 안겨준다.
아랍인들이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감고 자폭하면 다음날은 이스라엘 헬기와 군인들이 보복하고 여기에 다시 아랍인들의 자살폭탄 테러가 이어지고 끝이 없는 악순환이다. 그런데 누가 이길까. 자살폭탄 테러를 이스라엘이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 문제다. 세계의 여론은 약자에게 동정을 보내게 되어 있다.
93년 9월13일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와 이스라엘의 레빈 수상이 백악관에서 굳게 악수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탄생을 약속했을 때 세계 언론은 이들이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칭찬했다. 아라파트와 레빈은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불과 10년을 못 넘기고 최악의 유혈사태를 벌이고 있으니 아랍인과 유대인의 관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두 사람의 손을 들어주며 화해에 성공했다고 활짝 미소 띠던 미국 대통령은 모두 망신당한 셈이다.
결국 중동의 평화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빼놓고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유대인이 지난 2,000년 동안 형언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계속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면 피해망상증에 의한 현실판단 착오만 되풀이할 것이다. 팔레스타인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이기기 힘들다.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폭하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당할 것인가. 이스라엘은 지금 역사의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다. 약한 사람이 강해졌을 때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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