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일하다보면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
고치기 힘든 병이었는데 완쾌나 치료가 잘되어 이전의 좋은 상태로 돌아간 경우가 그렇고 열심히 진료를 하고 좋은 약은 다 써보아도 결과가 비극적인 때가 그렇다. 후자의 경우는 의사로서의 좌절감과 무력감이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내 환자들 중에서 첫 번째에 해당되는 환자는 40대대의 백인으로, 우연한 기회에 치료를 하게 되었다. 사석에서 만나 통성명 후 내가 정신과 의사라고 하니, 자기가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라며 그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다. 여러가지 중년의 문제들을 갖고 있었고 자기진로에 대해서도 회의가 많았다. 아버지가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대학 졸업후 어머니와 비즈니스를 20여년 꾸려왔다고 했다. 사업은 그럭저럭 되고 있으나, 어머니와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신물이 날 지경이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는 자기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에디프스 컴플렉스의 전형적 케이스였다. 다각적 심리치료 모델을 동원하여 치료를 했다. 처음 그의 어머니는 그와 다툴 때마다, 너 슈링크(Shrink-정신과 의사의 미국 속어)에게나 가보라는 식으로 놀렸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후 그 어머니가 찾아와서 “아들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며 자기도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와 그 환자를 같이 혹은 따로 한 열번 보고나니, 이번에는 그의 부인이 찾아왔다.
자기 남편이 남편노릇도 그전보다 잘하고 사업에도 이전보다 성실하고 책임이 있어 무척 고맙다고 했다. 지금은 사업이 번창했고, 결혼생활도 만족스러우며, 어머니와의 관계도 원만하다며 가끔 전화가 온다.
이것은 성공사례이고, 다음 환자는 역시 40대 중반의 백인 이혼녀로, 10대초반에 의붓아버지에게서 수년간 신체적, 성적 폭행을 당했고, 전 남편도 오랜 학대 끝에 이혼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사는 여자였다.
첫 진찰때도 우울증이 굉장히 심했고 외상후 증후군 증상이 심각해서 말을 하다가도 혼자 중얼거리며 자기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고, 환청, 환시 같은 증세도 있었다. 하루는 이 환자가 시를 써가지고 왔다.
“내 생애의 어두운 그림자/내 영혼의 시들어가는 벽아래에/내가 지불해야 했던 모든 것의 쓰레기가 놓여있네/내 과거의 뼈 사이에 산산히 부서진 그 조각들이 묻어있네…”
중증 우울증에 걸린 환자의 심경이 얼마나 처절하고 절망적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치료 시작한지 1년반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우울증의 어두운 심연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창희 UC 어바인 임상교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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