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케에주립 공원 주변에는 일년 내내 비가 내린다는 와이알레알레 산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으로 강과 호수를 이룬 여러 계곡들이 수려한 풍치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또한 삼나무 우거진 숲 속에는 희귀종 동식물들의 서식지로도 유명해서 미국 자연주의자들이 아끼는 곳이라 한다.
계곡과 계곡을 이어주는 산길은 숙련된 등산가가 아니라도 즐길 수 있는 낙엽 깔린 완만한 길이었다. 낙엽 깔린 산길 주변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풀꽃들이 채색의 옷을 입고 피어있었다.
약 6마일을 낙엽 진 오솔길을 걸어가니, 눈앞에 확 트인 평원에 우거진 갈대 숲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 풀고 서있는 갈대밭에서 우린, 아침에 싼 김밥 두 줄로 점심 요기를 했다. 점심을 꿀 맛나게 먹고 미술 협회 회원들은 작품 활동에 들어갔다. 사진을 찍는 사람,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는 사람, 누워서 하늘 보며 작품 구상을 하는 사람. 난 그저 눈치봐가며 잠깐 낮잠을 청하는 사람 속에 섞였다. 해는 어느새 하루 반을 넘어 기울어가니 김회장은 ‘더 이상은 절대 못 걸어간다’는 대원들을 부추기며 발걸음을 재촉, 나머지 4마일 길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서둘러 준비한 저녁 찬은 김치 두부 찌게. 돼지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고 두부와 김치로 푹 끓인 찌게를 벽난로 앞에서 코 등에 땀을 흘리며 먹으니 인간사 이만하면 살만하지 않는가 싶었다. 간밤에 추웠다고 남자 대원들은 나무를 모아와서 이방 저방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마이클 김 회장은 미협을 대표하여 저녁 설겆이를 혼자서 감행하는 기사도를 보였고, 이광규 전 회장과 김용택 회장은 이쁜 손잡이가 달린 보기에도 장난감같은 도끼와 톱을 가지고 나무들을 벽난로에 집어넣기 안성마춤으로 잘랐다.
벽난로 불은 고운 빛을 띄며 활활 타올랐다. 하루 종일 걸은 몸이 노곤했다. 머리를 베게에 누이면 그대로 잠들어 버릴 것 같았지만 초겨울을 닮은 밤이 깊어 가는 것과 멀어져 가는 하루가 아쉬워서 일행들은 모두 불가에 모여 앉았다. 누가 가져왔는지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에 웃음이 낭자하고 일행들의 입에서는 윤선도, 황진이, 김삿갓의 싯귀가 흘렀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도 시낭송에 끼이고, 목련화도 부르고 수선화도 부르고, 어느 독실한 보살님은 반야심경도 외웠다.
청산에 살어리랐다. 살어리 살어리 청산에 살어리랐다. 모여서 가슴을 열면 이렇게 뜻뜻하고 좋은 걸. 몸사리지 않고 서로를 섬겨가며 음식을 만들고 설겆이를 하고, 그래서 합숙은 더불어 사는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기도 한다. 셋째 날, 비경의 푸오킬로 전망에서 바라본 칼랄라오 계곡은 전날의 절경을 무색케했다. 참으로 무소 부재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에 대한 경외감이 가슴 깊은데서 흘러나왔다. 신학자 몰트만이 창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역설한 것처럼, 내 속에 자연이, 자연이 내속에, 창조주가 내 속에, 내가 창조주의 가슴에 안겨 일체가 된다. 호놀루루 공항에 돌아오니 저녁 6시. 꼭 48시간 만의 귀향이었다. 돌아와서 생각하니 잘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고 난 그런 기분이 든다. 꼼꼼하게 잘 짜여진 2박3일의 여정은 참으로 버릴 시간이 없었다.
강을 감싸고 서있는 대협곡, 바다를 향해 달리는 계곡의 물줄기, 나무 숲이 우거진 산길, 낙엽이 깔린 오솔길, 작은 호수, 강줄기, 예쁜 꽃잎, 자연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마신 한잔의 커피, 쿡선장 기념비, 포이푸비치, 스파우팅 혼, 콜로아, 킬로하나 갤러리, 거기다 열심히 스케치를 하던 미협 회원의 모습이 마치 자연의 한 폭 같던 그런 기억들이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충분한 사전 답사와 산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산 속 구석구석을 구경하게 하고 일행을 안전하게 이끌어 준 주최측에 감사드린다. -끝-
-김수아(카피올라니커뮤니티칼리지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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