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맞은 사람이 제일 참기 힘든 것은 남들이 "한대 얻어맞으니까 기분이 어때? 정신 좀 차렸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남편에게 매맞은 어떤 여성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잘 지내고 싶어도 얻어맞은 후 사람 달라졌다는 소리 나올까봐 제일 마음에 걸린다"고 상담실에서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강한 사람은 몰라도 약한 사람이 맞으면 컴플렉스가 생기는 법이다. 4.29폭동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코리안이 미국에서 몰매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며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미국 신문이나 TV에서 이 날이 되면 "한·흑 갈등 그 후 얼마나 달라졌는가" 등의 타이틀로 특집보도를 할 때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코리안들이 흑인한테 혼난 후 많이 달라졌다는 시각에서 문제를 다루기라도 하면 미국 기자를 불러내 "당신이 4.29폭동을 어떻게 이런 시각에서 다룰 수 있어?" 하고 야단치고 싶어진다.
4.29폭동이 한인과 흑인 사이에 잠재해온 감정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논리다. 4.29폭동은 흑인과 백인의 충돌사건이다. 폭동의 원인은 백인들이 제공한 것이며 코리안은 고래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에 불과하다. 만약 미국 매스컴에서 폭동특집을 싣는다면 "경찰 어떻게 달라졌나" "사우스센트럴의 슬럼은 개선되었나"를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흑간에 사이가 얼마나 좋아졌는가에 초점을 갖다대는 것은 폭동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4.29폭동은 흑백 갈등이었다.
65년 8월 LA의 사우스센트럴에서 왓츠 폭동이 일어났을 때 당한 사람들은 유대인과 백인들이었다. 코리안이 당한 그 지역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먼저 당한 폭동 선배(?)가 유대인들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왓츠 폭동 몇주년이니 하는 식으로 이 날을 떠올리지 않는다.
이들은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소짓고 친절히 고객을 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폭동은 그런 식으로 풀어나갈 문제가 아니다. 코리안이 미소짓지 않고 흑인들에게 불친절해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코리안이 불친절하고 거만하다는 소리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폭동과는 별개의 문제다.
4.29폭동은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관 4명에 대해 무죄에 가까운 판결을 내린데 격분한 흑인들이 들고일어난 사건이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연방 검사가 개입하여 경관 4명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결국 백인들이 법을 상식에 기준해 집행하지 않고 법을 굴절시켰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나는 로드니 킹 재판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흑인 브래들리 시장이 보인 상기된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흑인 종교 지도자 머레이 목사가 "로드니 킹은 하나님이 지상에 보낸 메신저"라고 외쳤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로드니 킹은 강도 미수범 전과자인데 흑인들의 눈에는 하늘이 보낸 메신저라니 시각의 차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국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려면 코리안도 흑인처럼 행동하고 흑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어울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유대인들도 그것을 알고는 왓츠 폭동 이후 철수해 버린 것이다.
내가 아무리 미소와 친절로 손님들을 대해도 흑백 갈등 또는 흑인과 라티노 갈등 같은 것이 곪아터지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당하게 마련이다. 평소 흑인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장학금까지 주던 한인 가게들도 4.29폭동 때 불타 버렸다. 흑인동네, 특히 빈민가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한 경찰과 흑인들의 충돌사건은 필수적이며 폭동 가능성은 항상 잠재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29폭동은 결코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4.29기념 골프대회니 음악회니 하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미국에 이민 와서 처음 되게 얻어맞은 날이다. 뺨을 어루만지며 "나는 왜 맞았는가"를 상기해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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