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컵 결승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랭킹 40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이젠 ‘혹시’하고 우승까지 넘겨다보았으니 말이다.
욕심의 속성은 끝없는 바람이다. 우리의 목표는 애당초 16강 진출이었다. 4강은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16강에서 8강으로, 8강에서 4강으로 오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정상이 보이는 곳에 이르면 사람이 무리한 욕심을 내게 마련이다.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밑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에는 굉장한 자기 억제가 필요하다. 에베레스트 옆에 있는 로체봉에 오른 것만 해도 대단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한국팀의 밑을 보라. 눈물을 삼킨 포르투갈이 있고, 아직도 한국에 진 것을 못 삭인 이탈리아가 있고, 억울하다며 씩씩 숨을 몰아쉬는 스페인이 있다. 모두 월드컵 우승 후보들이다. 이들을 한국이 꺾은 것이다. 더구나 프랑스, 영국, 아르헨티나, 덴마크 같은 뛰어난 기량의 팀들도 4강에 오르지 못했다. 위만 쳐다보지 말고 아래를 쳐다보면 우리의 좌표가 나온다. 한국팀은 장한 일을 해냈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한국이 독일을 기적적으로 꺾어 요코하마에 진출해 브라질과 결승을 겨루게 되었다고 치자. 지금처럼 한국선수들이 피로에 지친 상태에서 결승전에 임한다면 패할 가능성도 있거니와 게다가 스코어 차이도 크게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망신당하면 지금까지 잘 쌓아온 신화적 이미지가 엉망이 될 것이다. "한국팀이 저런 실력으로 어떻게 결승전까지 올라왔지?" 하고 말이다. 스페인전과 독일전에서 한국팀의 피로 누적과 체력 한계가 눈에 띄게 드러나 보였다. 독일과의 대전에서 히딩크 감독은 전반에 상대방을 지치게 한 후 후반에 안정환, 설기현 같은 에이스를 집어넣어 속전으로 승부를 내는 전략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독일팀은 지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팀이 지치는 바람에 히딩크의 깜짝쇼가 연출될 수가 없었다. 한국팀이 만약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정도의 체력만 지닌다면 결승전에서 누구와 대전해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승이라면 몰라도 4강에서 2등이냐 3등이냐는 별로 의미가 없다. 4강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다. 그보다는 이번 월드컵 경기를 통해 보여준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세상 정말 많이 달라졌다. 아침 출근길에 LA 코리아타운 앞을 지나는데 15~22세 되는 2세 여학생들이 네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었다. 기특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부모들도 못 가르친 모국사랑을 축구가 해낸 것이다.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가 전혀 예상 못했던 해외 2세 현장교육 효과라 할 수 있다.
60년대만 해도 축구를 하는 젊은이는 가시밭길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직장취업도 힘들었거니와 축구팀 양성도 힘들어 중앙정보부가 ‘양지’팀을, 방첩대가 ‘CIC팀’을 국가적 차원에서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과 일본 등에서 프로로 뛰고 있거니와 이번 월드컵에서는 16강에 올랐을 때 협회와 정부에서 1억씩 2억원을, 그 후 8강과 4강을 진출할 때마다 1억씩 지급했으니 현재까지 1인당 4억의 보너스를 받은 셈이다.
언론계도 달라졌다. 옛날에는(60년대) 축구담당 기자로 발령 나면 사표를 쓰고 나가는 것이 편집국 분위기였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축구전문 기자를 각 신문방송에서 스카우트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 해설을 잘 쓰는 언론인들은 스타가 되었다. 특히 한국팀의 기적은 앞으로 한국에 축구 붐을 몰고 올 것이고 이렇게 되면 축구관계 산업도 활기를 펴게 될 것이다. 아들 낳으면 축구선수 만들고 싶다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이 모두가 월드컵 덕분이다. 세상 정말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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