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질주하던 기관차의 제동이 이제서나마 걸린 지금 ‘이제 우리 축구를 말할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많은 분량의 한국팀에 대한 칭찬이 국내에서 해외에서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한국축구팀에 관한한 그 칭찬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순수와 열정으로 타오르던 불꽃’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컵에 출전한 세계의 프로축구 스타들이 대부분 고액연봉을 받고 있는 오늘날 한국의 축구선수들처럼 ‘그라운드에서 작열(灼熱)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이미 영광의 정점에 오른 히딩크 감독이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석패한뒤 "우리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최선을 다했다.그리고 그들에게 고맙다"며 ‘눈물’을 보이고야 만 것은 그래서 전적으로 이해할만하다.
적어도 그들은 고전적 의미로 볼 때 그라운드에서 몸을 불살랐다.
한국팀에게 분패, 또는 석패를 한 이탈리아나 스페인등의 국가에서 심판의 판정을 두고 아직까지도 말이 있는 것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단언하건대 그것은 한국선수들의 탓이 아니다.
한국 선수들은 단지 최선을 다한 경기를 했으며 비열한 반칙게임은 하지 않았다.월드컵 참가 32개국중 마지막 순간까지 ‘불타오르는 투혼’을 눈으로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팀은 한국팀밖에 없었다고 나는 단언하고 싶다.
감히 말하건대 한국이 세계에 경이로움을 몰고 온 것은 ‘4강에까지 이른 실력’탓도 있지만 바로 이 감동이 세계인의 영혼을 자극했기 때문이 아닐까.
스포츠 전문학자는 아니지만 본래 스포츠란 ‘감동이어야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현대의 프로스포츠는 ‘엔터테인먼트(오락)’나 ‘승부’쪽의 비중이 점점 비대해지면서 ‘고통스런 도전의 꿈틀거리는 투혼’을 찾아보기란 점점 힘들어져갔다.
영국의 베컴이 준수한 외모와 헤어스타일등으로 스타는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발이 다칠까봐 공을 살짝 피했고 결국은 그 볼을 잡은 브라질 선수의 어시스트로 첫 골을 헌납하게 한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라운드에서 몇바퀴씩 나동그라지던 최진철이나 김태영, 유상철, 송종국,박지성등 한국선수들의 모습은 비록 투박하기는 하지만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불꽃의 작열’을 보았던 것이다.
해외 언론들은 한국팀의 선전 외에 하와이 한인사회는 물론 해외동포를 포함한 한국민들 수백만명의 ‘열광적이면서도 폭력사태가 없었던’ 거리응원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는데 다소 분위기에 편승하는 감도 없지 않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프로축구가 생활이자 ‘오락화’된 유럽이나 남미에서 관중들은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흥분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기든 지든 ‘훌리건의 난동’과 같은 필요악적 측면들이 나타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팀이 보여준 것은 ‘감동’이었기에 거리응원에 나섰던 사람들도 순수한 감동과 축제로 그것을 즐길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세계인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을 통해 ‘축구를 통한 고전적 감동의 부활’을 목격했던 것이고 그것은 축구가 상업화하고 오락화, 또는 지나치게 편의주의화 함으로써 본래의 감동을 상실해버린 세계축구계에 하나의 신선한 경종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이제 29일 3,4위전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다.
이미 그 순위에 이전처럼 팽팽한 긴장섞인 기대를 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민과 마찬가지로 세계인들은 한국의 3,4위전 경기를 꼭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과 한국선수들이 ‘비록 결승에는 가지 못했지만 3,4위전에서 여한없는 경기를 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처럼 마지막 폭죽놀이와 같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세계인들은 폐막을 앞둔 2002 한일월드컵 무대에서 한국대표팀의 ‘감동의 앵콜상영’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빈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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