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사격선수권 대회에서 북한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 우승소감을 묻자 북한선수는 “미제의 털 가슴을 쏘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말해 기자들을 아연케 했다.
이런 일도 있다. 권투의 밴텀급인가 플라이급에서 구영조라는 북한선수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가진 적이 있었다. 미국선수가 도전해 타이틀을 빼앗았다. 그러자 북한선수는 판정이 잘못되었다며 이스라엘 심판을 링 위에서 때려 눕혔다. 복싱 사상 유례 없는 해프닝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두 사람이 평양에 돌아왔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칭찬하며 격려해 준 사실이다. 한국 같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될 것이다.
자녀들이 밖에서 싸우고 돌아왔을 때 부모가 보이는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공부는 안하고 말썽만 피우고 다니느냐고 야단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왜 바보같이 얻어맞고 다녀? 물어뜯어서라도 이겨야 해”라며 한술 더 뜨는 부모가 있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기가 살아있다”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북한은 어떤 스타일인가 하면 후자에 속한다. 나중에야 문제가 되건 말건 우선 상대방을 혼내주고 볼 일이라는 것이 근본자세다. 76년 판문점 ‘미군 도끼 살해사건’도 이같은 분위기에서 일어난 것이다.
한국 해군함정이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격침된 것은 이번 서해안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68년 동해안에서 한국 해군의 56함이 북방한계선을 실수로 넘었다가 북한 해안포대의 집중포격을 받고 침몰해 40여명의 한국해군이 사망했다. 이 때문에 당시 전쟁이 날 뻔했다. 한국 공군기가 보복공격을 가하려 하자 본스틸 유엔군 사령관이 말리는 바람에 일방적으로 한국군이 얻어맞기만 한 싸움이 되어 버렸다.
“왜 바보처럼 얻어맞고 다니느냐”고 아이들의 기를 돋워주는 부모와 “제발 말썽 일으키지 말라”며 자제를 강조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기질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세월이 흐르다보면 한쪽은 쌈닭이 되어 있고 한쪽은 햄릿이 되어 버린다. 군인에게 복잡한 명령을 주면 결국 충돌을 피하는 쪽으로 신경이 발달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북한이 한국군의 햄릿 체질을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 싸움에서 지면 어떻게 되는가는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우리가 눈으로 본 사실이다.
얼마전 평양 관광길에 판문점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본 인민군은 “사기가 높다”는 표현보다는 “살기가 등등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였다.
브리핑에서도 말끝마다 “놈들은…” 소리가 붙어 다녔다.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도 이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금강산 길목에 인민군 초병들이 서있는데 이들이 남한 관광객을 쳐다보는 눈빛이 어찌나 매서운지 가슴이 섬뜩할 정도다.
북한을 돌아다녀 보면 군은 “우리는 남북 평화회담이 무엇인지 알 바 아니다”의 자세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반대로 한국군은 너무 정서에 민감하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햇볕정책’ 시대에서 군인이 알아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수학에서 미분적분을 푸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국군과 인민군의 성장 배경은 너무나 다르다. “싸워라. 말썽 일어나면 내가 책임진다.” 이것이 북한 수뇌부의 자세다. “참아라. 얻어맞은 사람이 다리 뻗고 잔다.” 이것이 한국 수뇌부의 자세다.
히딩크가 한국 선수들에게 몸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왜 강조했는지를 상기한다면 군인의 자세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의 답안도 윤곽이 떠오른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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