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최대 국경일인‘Fourth of July’(독립기념일)가 올해는 테러 걱정으로 어정쩡한 분위기다. 부시 대통령 자신이 지난주 백악관 상공에 정체불명의 경비행기가 접근하는 바람에 한때 긴급 대피해야만 했다. 9·11 사태 이후 테러공포는 이제 미국인들 사이에 필부필부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일상이 돼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연방정부는 9·11 이후 처음 맞는 올 독립절을 미국인들의 애국심과 단결력을 과시하는 한 마당 잔치로 치른다고 했는데, 오히려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조국안보국 등 당국은 바로 그 잔치마당이 테러 목표가 될 수 있다고 겁을 줬다. 특히 FBI는 전국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와 축제 등 주요 행사장을 집중 경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테러 경계령을 부시 대통령이 결정했을까? 듣기로는 그의 보좌관들과 국가안보회의 등 관계 기관의 건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독립기념일이 썰렁해지면 대통령의 인기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회전이 빠른 부시가 모를 리 없다. 축제를 벌이되 국민들에게 인내와 자제를 요구하는 양면작전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벌 오피스’(백악관 내 대통령 집무실)의 결정은 참모들의 판단에 따르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전 때 중공 폭격을 주장한 명장 맥아더를 명퇴시킨 트루먼은 예외적으로 참모 없이 내각을 중시한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권력을 장악했고 국무부가 전성기를 누렸다. 아이젠하워는 내각을 중시한 마지막 대통령이었지만 내정은 셔먼 애담스 비서실장에 일임해‘애담스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케네디는 취임 초 피그스 만 작전이 실패하자 직업관료를 불신하고 소렌슨과 번디 등 보좌관 및 슐레진저 국무장관 등 하버드 인맥을 편애했다. 그 뒤를 이은 존슨 때는 로버트 맥나마라 장관이 중용돼 국방부가 전성기를 맞았다. 현재의 부시는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 등‘철의 삼각’으로 불리는 텍사스 출신들로 측근을 구성하고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 콜린 파웰 국무장관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 균형보다는 알력이 가끔 노출되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은 실제로는 연방정부의 수반일 뿐이다. 외교, 국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는 주정부나 지방정부 소관이다. 미국은 제도상 권력분산이 가히 예술적이다. 대통령이 군 최고사령관이면서도 선전 포고권은 의회가 갖고 있다. 애당초 미국 헌법정신은‘강한 의회, 약한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인사권과 재정권은 상원의 인준을 받도록 돼 있다. 앤드류 존슨 대통령(1860)은 국방장관을 호기 있게 해임했다가 탄핵 당할 뻔했다. 미국의 대통령은‘방대한 참모진과 자문기구들의 합리적 계산’때문에 정책을 단독 결정할 수 없다고 제임스 바버는 그의 저서‘대통령의 성격’(1970)에서 지적했다.
미국 대통령의 역할은 수장이나 제왕보다는‘조정자’에 가깝다. 이번 테러 경계령도 기실 테러 위협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조정일 뿐이다. 시애틀 시장 그렉 니클스는 이 조정을 받아들여 시애틀 지역의 독립기념일 행사들을 계획대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선임자인 폴 셸이 2년전 송구영신 축제를 취소시켰다가 욕바가지를 뒤집어쓴 예를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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