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들이 몰려온다. 방학을 맞은 초중고 생들이 단기 영어연수 목적지로 시애틀을 꽤 선호하는 모양이다. 시애틀은 환경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범죄가 비교적 적을 뿐 아니라 이 지역 동양계 학생들의 성적이 백인학생들과 어깨를 겨룰 만큼 우수하다는 사실이 본국 학부모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친근하기 때문인 듯 하다.
초등학생들까지 영어를 배우러 미국에 떼지어 몰려온다는 사실은 이곳 올드타이머 한인들로 하며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한인사회의 초석이 된 유학선배들은 대개 배를 타고 몇 달씩 걸려 망망대해 태평양을 건넜다. 70년대까지도 미국유학은 제한된 학생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졌고, 이들은 접시 닦기 등을 하며 고학하기 일쑤였다.
필자가 젊었을 때 미국에 유학 떠나는 학우나 직장 동료들은 흔히‘청운(靑雲)의 뜻’을 품었다는 찬사나 격려의 말을 들었다. 실제로 이들은 갖은 고생 끝에 선진 학문을 배우고 돌아와 나라의 동량이 됐다. 오늘날 한국이 저만큼 발전한 것은 이들 유학생을 배출해낸 한국 학부모들의 뜨거운 자녀 교육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요즘 한국 어린이들이 영어를 배우러 미국에 오는 것은 경하해야할 현상이다. 우리 조국이 그만큼 잘 살게됐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인처럼 영어를 발음하도록 자녀에게 혀를 늘리는 수술을 시킬 정도로 조기 영어교육 붐이 무섭게 일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들이 미국에 몰려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들의 연수 방법이다. 한국의 초등학생 18명이 에버렛의 한 학교에서 연수 중인데 이들이 전통적 어학연수 방법인 미국인 가정의 민박 대신 고급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필자의 사고방식이 고루한 탓인지 몰라도 학생들, 더구나 적응력이 한창 풍부할 나이의 어린이들이, 왜 호텔에 머물며 연수하는 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외국어는 강의실보다 실제 가정생활에서 더 쉽고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 이들이 미국에까지 온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이 가르치는 영어학원은 한국에도 많다.
한국의 일부 학부모들이 시애틀의 부자 동네인 머서 아일랜드에 집을 사서 자녀들을 유학시킨다는 보도도 있었다. 평균 집 값이 70만달러나 되는 이 부자동네 학군에 본의 아니게 유학 온 자녀들은 소수민족이 발붙이기 힘든 주위환경에 적응 못하고 낭패를 겪기 일쑤라는 것이다. 미국 연방법(CRA Sect. 7&8)은 교육 차별적인 학군제도를 규제하고 있다. 한국인 학부모들의‘좋은 학군’맹신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들이 반세기에 걸쳐 쟁취한 소수민족의 민권과 평등권 개념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급우들에게‘왕따’당하지 않게 하려고 코흘리개 자녀를 미국에 어학연수 보내는 학부모나, 부자 학군이라는 소문만 듣고 무작정 자녀를 유학 보내는 학부모나, 자녀 교육열이 빗나가긴 매한가지다. 시애틀 한인들 가운데는 조기유학 보낸 자녀들을 돌봐달라며 떼쓰는 본국의 인척이나 친지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의 자녀교육 가치관이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그것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연수 온 어린이들이 생판 모르는 미국인 가정에 민박하면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를 받게될 것이라며 호텔 투숙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공부는 없다. 그만한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한다면 아예 연수 오지 않는 편이 낫다. 또 호텔 이용이 민박보다 경비가 덜 든다고 말하지만 한국 학부모들이 그 정도 경비를 따질 것 같지는 않다.
미국에 연수나 유학 오는 한국 학생들 가운데는 장차 조국의 동량이 될 인재도 있다. 그러무로 이들이 유학선배들처럼 참 교육을 받도록 돕는 일이 바로 현지의 한인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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