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여름 서울에 있었다. 당시 한 대중가요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거리의 화장품 가게에서도 지하철의 레코드 가게에서도 라디오 방송에서도 줄기차게 흘러 나왔다. 이 노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몇 구절 가사를 따라하는 정도로 자동 암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노래가 ‘화장을 고치고’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는 것은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나 알게 되었다. 이후 어찌하다보니 지금은 이 노래가 베스트 목록에 추가되게 되었다. 이 노래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발라드 성이라 ‘쉰 세대’인 내가 좋아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이 노래의 주제는 많이 알려진 대로 떠나간 애인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전형적인 사랑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에 대해 오늘 내가 시비를 하는 이유는 이 노래 속의 여자 주인공에게 남자가 왜 떠나갔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그에 따를 충고를 하고 싶다는 주제넘은 충동 때문이다. 노래의 가사 속에는 "나 같은 여자를 왜 사랑했는지 왜 떠나야 했는지"라는 가사가 있고 또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어 그래서 미안해"라는 가사가 있다. 이 노래 속의 남자가 왜 여자를 사랑했는지는 족집게 도사도 짐작이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왜 떠나갔는지는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날 때는 아무리 신세대 여자들은 여자가 먼저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서가 전통적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위를 지킬 것은 분명하다. 남녀가 사랑을 시작하면 선물 주고받기가 곧 뒤따른다. 왜냐하면 선물은 사랑의 감정에 대한 물질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선물도 대체로 남자에 의해 시작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물의 크기가 사랑의 크기와 비례하기도 한다. 남자는 선물을 줌으로써 여자를 기쁘게 해주고 싶고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기뻐진다. 영화 속에서도 남자가 선물을 할 때 선물을 받은 여자가 기뻐하는 장면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에서는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가 일방통행적으로 계속될 때 문제가 될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비록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는 감정은 그만큼 받는 것을 기대하고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여자도 어느 정도의 반응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물론 사랑 자체의 적극적 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물질적인 반응도 전혀 배제될 수 없다. 여자도 남자에게 비록 적은 것이라도 선물을 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선물은 사랑에 대한 표현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 속의 여자는 자신의 고백처럼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받기만 했을 뿐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물질적 선물은 물론 사랑의 표시도 하지 못한 듯하다. 이런 경우 남자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오판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 실제로 여자가 "남자가 별로"라는 생각이 있을 때 그런 반응을 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남자는 맥이 빠지기 시작할 것이며 남아 있기가 힘들 것은 분명하다. 결국 노래 속의 남자는 떠나가는 마지막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노래 속의 여자는 떠나간 남자와의 관계의 원상복귀를 원하고 있지만 남자가 돌아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아 보인다. 기다리다 지치면 여자는 화장을 고치고 정신을 가다듬을 것이다. 이제는 노래 속의 여자도 미래의 남자에게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아픔만큼 성숙해지고 라는 또 다른 노래의 가사처럼 아픔을 딛고 성숙해졌을 테니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