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에 직업전환을 한 이유는 좀더 안전한 평생직업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군복무시절부터 김학헌(71)씨는 자동차검사계통에서 근무하면서 줄곧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월남전 때는 자동차기술자로 참전하기도 했고 한국의 교통부에서도 일할 만큼 그는 자동차와 평생을 살 듯했다.
그러나 김학헌씨가 40살이 되던 1971년, 하와이로 이민을 와서 그가 택한 길은 이발사였다.
당시 영어도 서투르고 미국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그가 일반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자동차기술로 중년의 나이에 얼마나 오래 더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30년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는 김학헌씨.
그는 40살에 인생의 새로운 도전장을 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그는 1972년 다운타운에 있는 호놀룰루 이발학교에 들어가 나이어린 학생들과 같이 머리 자르는 기술을 배웠다. 학교 졸업 후 미군부대에서 3년간 군인들의 머리를 깎아주다가 마침내 개인이발소를 차려 현재까지 30년간 이발사라는 외길을 묵묵히 걸어 오고있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아직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김학헌씨는 한국의 자유당 시절, 군복무를 마치고 오랫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안전한 직업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시간만 낭비하고 어느 하나에도 능숙할 수 없다"면서 "하와이에 오자마자 이발학교에 입학해 이발사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오고 보니 그 때 결정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현재 30년 동안 주 7일, 쉬는 날도 없이 이발을 하고 있다.
40살에 낯선 이국 땅에서 새로 시작한 인생 길, 처음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학헌씨는 "화려한 직업은 아니지만 혼자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시간 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한 가지 이유로 이발사라는 직업을 택했고, 71살이 된 지금도 그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에 순종하며 이발사, 외길을 계속 걷고있다.
<김현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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