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목련꽃 진 자리 휘파람새는 잠도 안 자고’에서 테너 엄정행 씨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 하나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강원도 탄광촌인 황지에서 공연을 했는데 허술하게 급조된 무대였지만 많은 광부와 그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어수선한 공연 분위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고조되어 노래를 부르는 자와 듣는 자들이 하나가 되었고, 서로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노래하는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공연후 흥분을 가라앉히며 쉬고 있는데 무대 뒤편으로 광부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군살이 박힌 시커먼 두 손으로 엄정행 씨의 손을 덥석 잡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선생님 노래를 듣고 보니 노래는 참 좋은 거구만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년이 노래부르는 대학교에 간다기에 그건 시간 많은 풍각쟁이나 하는 짓이라고 뜯어 말렸는데, 이젠 제 딸이 노래를 부르겠다면 땅 밑 2천 미터가 아니라 3천 미터라도 내려가겠습니다.”
엄정행 씨는 그 광부에게서 받은 찬사가 성악가로서 받은 최고의 찬사이며, 그 찬사로 인해 자신이 걸어가야 할 음악의 길을 보았노라고 말한다.
엄정행 씨가 말하는 음악의 길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길은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고와 삶을 바꾸어주는 길일 것이다. 엄정행 씨가 그날 본 성악가로서의 길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 부르는 자신의 노래로 선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끼치는 길일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요 방법이라고 직업의 정의를 내린다. 따라서 한 차원 높여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거나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 수단으로서 직업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런 관점 때문에 결과적으로 직업에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으며, 일하는 상황이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지면 “야, 먹고살기 정말 힘들다”며 더 나은 직업을 찾아 나선다.
천직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내린 직업이라는 말이다. 나의 직업을 그저 먹고사는 수단이라고 보는 직업관을 가진 이의 삶과 천직이라고 보는 직업관을 가진 사람의 삶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천직이라고 보는 사람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 해결 차원을 넘어 이웃과 사회의 유익이라는 차원에서 일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직업을 사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거시적인 눈을 갖고 건설적이며 창조적으로 일하게 된다.
예로 비록 무더위 속에서 햄버거를 구워도 사명감 차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손님의 건강을 책임지는 파수꾼과, 건강한 외식문화 창조의 선구자라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재봉틀을 밟아 종아리가 아파도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인류의 패션을 주도한다는 긍지를 느낄 수 있다. 다양한 모양의 손님들에게 시달리며 식당 웨이트리스를 해도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친절과 편안함을 나누어주는 전령으로서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민자의 직업은 대부분 육체 노동직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명감이니, 자부심이니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임감이나 긍지는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일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고 있는 일이 육체 노동이건 정신 노동이건 간에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직업관과 사명감이다. 그렇게 되면 똑같은 일을 하지만 이전보다 보람도 느낄 수 있고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비록 더운 날씨에 불쾌지수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한 여름 철이지만 더 높은 차원의 직업관으로 짜증과 푸념은 날려버리고 휘파람을 불며 신나게 일하는 한인들의 일터를 그려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