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 발을 붙인 70년도 초반의 미국은 거리거리마다 여성해방을 외치는 물결로 뒤덮였었다. 많은 여성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남녀평등의 구호를 소리높이 외치며 부르짖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외침은 헛되지 않아 남자만의 소유였던 모든 직업에 여성들이 들어가 일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높고 위험한 전봇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일하는 여성을 보게 되는가 하면 헬멧을 머리에 쓴 채 그 무거운 호스를 들고 소방서에서 일하는 여성. BART를 운전하는 여성. 무거운 짐을 나르는 여성. 위험한 구역에서 일하는 여성경찰 등…
하물며 철통같던 사관학교에까지 들어가 그 힘든 군복무를 마치는 여성들. 그뿐이랴 남편의 보호 아래 집에서 자녀만 키우던 전문직의 여성들이 회사로 쏟아져 나와 남성과 똑같은 봉급을 요구하며 고위직에 자리잡은 여성들. 여성 수상, 여성 대통령, 우리나라도 처음으로 여성 국무총리가 탄생할 뻔했는데 그의 도덕성으로 무산돼 안타깝다.
“누가 국무총리가 될 줄 알았나?”란 만화가의 우스개 소리와 또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건지…??? 어쨌든 이젠 모든 분야에 여성이 자리잡지 않은 곳이 없게 된 듯하다.
‘나’ 역시도 짧은 영어로 첫 회사에 근무하게 됐을 때 미국인과 평등하게 일한다는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해졌던 첫 출근을 기억하고 있다. 확실히 여성해방운동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너무 많았고 여성이 얼마만큼 강한가를 인정받고, 세상에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집에 있는 여성들은 움츠러들었고 직장 여성은 능력을 인정받는 시대였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2000년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방향은 확실히 바뀌는 듯하다. 이혼한 여성이 늘어나고 몇 십년 사회생활에 그들은 지쳐 있으며 집에서 자녀를 키우며 남편의 그늘 아래 살던 날들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고 있는 듯하다. 여기 여성해방운동의 물결과 더불어 겪었던 어느 주부의 글을 미국 신문에서 읽고 간추려 소개해 본다.
“남편과 두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던 나는 여성해방운동과 더불어 가정을 뒤로 한 채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었다. 회사와 가정을 잘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잦은 다툼과 더불어 이혼장에 도장을 찍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성공의 나래를 펴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경제적 쪼들림으로 넓은 집에서 아파트로 이전하며,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무거운 서류가방과 웃음이 사라진 찌든 모습”이라고. 그는 모든 여성을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남녀 평등을 부르짖으며 결정한 내 가정의 선택은 옳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참으로 가슴 아팠던 글이라 지금도 내 마음속에 진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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