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가 1952년에 만든 흑백 걸작. 종전 후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노신사의 투쟁이 심금을 울리는 뛰어난 영화다.
데 시카가 자기 부친 움베르토에게 바친 영화로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뉴욕 영화비평가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후 이탈리아 사회를 지나치게 암담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문화상으로부터 더러운 세탁물을 세상에 공개하는 행위라고 비판받았다.
움베르토 D.(배우가 아닌 대학교수 알로 바티스티의 민감하고 정교한 연기가 뛰어나다)는 은퇴한 공무원으로 친구도 가족도 장래도 없이 혼자 외롭게 아파트서 산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재주를 부릴 줄 아는 개 플리케.
그는 30년째 살아온 아파트의 렌트도 밀린 데다 쥐꼬리만한 연금으로는 먹고살기도 힘든 처지. 아파트의 여주인이 움베르토를 내쫓겠다고 위협하면서 움베르토는 구걸을 비롯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돈을 마련하려 하나 모두 실패한다(로마 거리서 움베르토가 자기 모자를 입에 물고 선 플리케와 함께 구걸 행각을 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처연하다).
절망한 움베르토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나 혼자 남을 플리케가 불쌍해 그것도 포기한다. 움베르토는 또 한번은 개를 안고 달려오는 열차에 투신자살하려고 하나 겁먹은 개가 움베르토의 품에서 빠져나와 도망가면서 이 시도도 좌절된다.
항상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다니는 움베르토는 가끔 아파트 주인의 젊은 하녀와 말동무를 하나 그것으로는 자신의 고독을 달래지 못하는데 어느 날 연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인들의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된다. 움베르토는 희망과 행복 없이 생존해야 할 운명으로 그야말로 살지도 죽지도 못할 신세.
그런데도 그는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플리케와 공원에서 장난을 즐기며 또 하루를 보낸다. 라스트 신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정 가득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매우 우울한 영화지만 실은 삶으로 터질 듯한 생존 긍정 드라마다. 간단한 외형 안에 겹겹이 쌓인 내면을 지닌 영화로 전후 이탈리아 사회정책에 대한 기소이기도 하다.
굉장히 감상적일 수 있는 작품이 감독과 각본가 체자레 자바티니의 솔직하고 사실적인 연출과 글 때문에 일체의 싸구려 감정이 배제 돼 있다. 데 시카는 움베르토를 동정이나 연민의 마음으로 묘사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줘 더욱 그의 불행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찢어 놓는다.
이번에 새로 복원된 필름으로 쇼케이스(614 N. 라브레아, 323-934-2944)서 상영. Ria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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