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전 동부에서 막 이사왔을때 가든그로브는 죽은 도시 같았다.
그런데 한인들이 상가를 사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인타운이 형성되고, 그후 한인들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죽어가던 도시가 활기를 띄었다. 땅값도 환경의 조건에 비해 비싼 값으로 껑충 뛰었고 여기에 대형마켓이 들어오면서 도시의 활기는 더해갔다. 식품점 간의 심한 경쟁 덕에 소비자들은 싼값에 좋은 식품을 살 수있게도 되었다. 파10단에 99센트, 시금치10단에 센트 할때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받아서 어떻게 가게를 운영하나 싶다.
그런데도 그많은 파를 뒤져서 좋은 것을 고르느라 주물러 놓는 모습을 자주 본다. 박스 안에 든 참외나 망고 같은 과일을 좋은 것으로 고르느라 이 박스 속의 것을 저쪽으로 옮겨 담아가는 사람들도 자주 본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많이 먹으려고 저러나 싶어 눈살을 찌프리다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속에 비치는 나 자신을 보며 흠칫 놀란다.
물자가 더할수 없이 풍부한 환경에 살면서도 그 옛날 끼니 걱정하던 때 콩나물 몇 가닥 더 얻으려고 콩나물장수와 실랑이 하고, 조금이라도 더 큰 꽁치를 고르려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던 버릇을 쉽게 버릴 수가 없나 보다. 3살 버릇 80까지 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덜 먹어 살찌는 것을 방지해려고 고민하는 이 시점에서도 남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옛날 버릇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몇 년전에 신바람건강으로 유명한 황수관박사의 강연 중 들었던 이야기가 나를 더 이상 무의식적인 욕심에 집착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어느 날 생선 비린내가 물씬 나는 초라하고 병색이 완연한 부인이 황박사를 찾아와 상담을 했다. 그 부인은 두딸과 함께 병든 남편을 돌보며 새벽시장에 나가 생선장사를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선 한마리를 사기 위해 온통 뒤적거리는 바람에 나중에는 남은 생선을 팔수가 없게 되고 그 때마다 속이 상해서 견딜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10여 년을 장사했는데 간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황박사는 그 부인에게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야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생선을 뒤지더라도 속상해 하지말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만을 명심하라”고 일러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황박사는 집에 가자마자 자기 부인에게 “니도 뒤적거리나?”하고 소리를 지르며 생선장사 아주머니의 딱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무슨 물건을 집으려고 할때마다 “니도 뒤적거리나?”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금은 그때와 물론 상황이 다르고 또 상대가 대형마켓이지 가난한 아주머니는 아니지만 남을 배려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길이기에 무의식적으로 하던 우리의 행동을 돌이켜본다.
우리는 미국의 한 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60년대 한국서 살던 삶에서 벗어자니 못하고 있으니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나라 식품점을 보면 그 나라의 국민수준을 쉽게 알 수있기에 샤핑매너부터 바꿔야 겠다고 생각한다.
요즈음은 우리 식품점에도 베트남인등 타민족들이 많이 오는데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서 그들이 마음놓고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것이 세계화를 이끌어 가는데 보탬이 되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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