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새댁들처럼 살림살이 제대로 할줄도 모르고 김치도 한번 담구어 보지 못한 애숭이 새댁으로 한국을 떠난지 30여년이 지났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외모도 살림의 스타일도 변했는데 이제까지 변하지 않은게 있다면 아직도 김치를 담궈보지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보다 먼저 미국오신 친정 어머니가 이곳에 살며 20여년 동안 김치를 담궈주셨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어머니 김치를 못 가져오면 사먹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꽃집을 하며 회사엘 다니다 보니 늘 바쁜 생활에 감히 김치 담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모처럼 연휴가 되면 늘 잠이 모자라 충혈된 눈으로 늦잠자기에 정신이 없고 무엇보다도 김치를 맛있게 담글 자신이 없었다.
이제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김치를 한번 담궈보자 생각하고 맛있는 김치가 되리라는 기대도 자신도 없기에 배추 한포기 반을 절여놓았다. 그 알량한 배추 한포기 반으로 김치를 담그고는 김치병을 열번도 더 열어 보았다. 김치가 거의 익어갈 무렵 조그만 병에 나누어 며느리를 주며 먹어보라고는 했지만 내가 담근 것이라고는 말하질 않았다.
한주일후쯤 며느리가 물었다 그 김치 어디서 샀느냐고. “왜?” 나의 물음에 며느리는 김치가 아주 맛있더라는 것이다. 그제서야 내가 어깨 쭉 펴고 목에 힘주고 말했다.
“응, 그거, 내가 만든거야”.
어머니 김치 20여년을 받아먹으며 내가 몇번이나 “엄마, 엄마김치 정말 맛있어요” 하고 얘길했나.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왜 그리도 칭찬에 인색했는지, 좀 더 감사하고 기쁘게 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아마도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하셨을텐데.
김치 맛있다는 며느리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내어 한국 식품점에 들러 겁없이 배추 한 박스를 샀다. 부엌바닥에 늘어놓고 그릇마다 절여 놓았는데 은근히 겁이 났다. 이 많은 김치 담궈놓고 맛이 없으면 어쩌나. 며느리도 딸도 못주고 이웃과는 더구나 나누어 먹을수 없을테니. 애라, 이왕 벌려 놓은거 할수 없으니 기도라도 하자.
“하나님, 이렇게 많은 김치 어떻게 언제 혼자 다 먹습니까? 맛있어야 나누어 먹죠. 제발 제 손끝에 맛내는 솜씨 한번 붙여 주세요”
무슨 배짱이 생겼는지 통마다 가득가득 담아 놓고 열어보지도 않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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