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일을 못하고 죽는다면, 아마 임종의 순간에 후회할 거야” “마지막 순간에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지금의 결정을 최후의 순간에 잘했다고 생각할 것인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삶의 방향을 정할 때 임종의 순간에 좌표를 두고 그 미래 시점에서 현재를 조명하여 조심스럽게 삶을 설계하는 태도는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현명한 한 방법일 것이다. 영어로는 이러한 의미의 임종의 순간을 ‘death bed’라고 한다.
나에게는 아름다운 임종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나의 외할아버지 한정교 목사님께서 장암 말기로 병실에 누워 계실 때,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드렸다 첫번째 질문은 “할아버지 무엇이 제일 드시고 싶으세요?”였다. “낙동강 잉어회가 먹고 싶군. 잉어회 먹을 때 밥이 맛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셨다.
그래서 낙동강에서 나는 제일 물 좋은 놈을 구해서 병원 앞에서 회를 쳐서 할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며칠 후 돌아가실 테니 디스토마 감염 걱정은 안 해도 됐었다. 하지만 암 때문에 삼키시지는 못하고 미소지으며 바라만 보시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할아버지, 평생을 고아들 돌보시고 목회 하시며 늘 새벽기도 하고 살아오셨는데 틀림없이 천당에 가시겠지요?” 하는 두번째 질문에 할아버지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잘 해야지” 웃으며 대답하시고 3일 후에 운명하셨다.
이런 편안한 기분 좋은 임종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암모니아성 뇌성 혼수로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 혈액 전해질의 불균형이나, 심장운동의 불규칙 등으로 신체 및 정신이상이 초래될 수 있고, 오랜 투병생활과 만성 통증이 계속되어 뇌 전달 물질이나 신경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우울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 결과 임종의 순간이 오기 전 이미 평소의 환자 자신의 인품이 변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말기 알츠하이머이다. 예를 들면, 있지도 않은 물건을 누가 와서 훔쳐갔다고 가족을 도둑으로 의심하는가 하면, 배우자가 자기를 배반하려고 모함을 꾸미고 있다는 망상에 격분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임종의 순간에 하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말기 암환자나 만성질환의 악화로 임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다 보면 그들을 간호하는 가족들이 더 심하게 신체적 질환으로 고생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어떤 때는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가족부터 먼저 치료해야 하는 수도 생긴다.
임종의 순간은 몇 초가 될 수도 있고, 며칠, 몇달이 될 수도 있으며 여러 번 겪을 수도 있다. 병으로 인해서 또는 병 간호중 실수로 부적절한 언행을 하거나 심지어 자살 기도까지 벌이는 경우가 있다. 혹시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기 보다 “이것은 잘못 되었다” “이건 죄다”라고 쉽게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의 실수, 고통, 약함, 공포, 그 자체가 솔직하고 인간적인 우리 모두의 모습 아닌가.
조만철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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