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익은 대추를 먹을 수 있을까 싶어 뒤뜰에 나와보니 대추열매가 이미 푸른빛이 옅어지며 옷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발 밑에 잎사귀와 가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아뿔싸! 누군가가 벌써 대추가 익기도 전에 시식을 하고 간 흔적을 남기다니!
이곳 남가주는 사막성 기후라서 벌판에 냇물이 흐른다던가 옹달샘 등이 없어서 야생동물들이 목마름을 해결할 곳이 특별히 없다. 그런 탓에 동물들은 목마름을 달래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열매나 과일 또는 가시 없는 선인장들을 즐겨 따먹는다.
우리 집 뒤뜰엔 과일나무가 몇 그루 자라고 있다. 과일이 익어갈 무렵이면 주인이 맛도 보기 전에 이미 과일의 절반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가끔씩 일어났다. 대추 한 알, 사과 한 알이 온전히 영글어 가길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과일 한 귀퉁이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새떼가 달려들어 달디단 부분만 쪼아먹고 가곤 했다.
간밤에 무르익어서 떨어지는 과일은 새벽에 일찍 일어난 토끼가 야금야금 배불리 먹고 남겼다. 버려진 과일은 이제 개미들 차지가 되었다. 그들은 기나긴 겨울 양식을 위해 새까맣게 달려들어 합심하여 자기네 곳간으로 열심히 끌고 갔다. 나무를 잘 타는 다람쥐는 수시로 나타나서 원하는 곳 아무 데나 팔을 뻗어 맛있는 것으로 골라 배를 채웠다. 야밤엔 사슴이나 큰 짐승들이 다가와 자기 키 높이의 것들을 따먹는다. 육중한 몸매로 나무 가지를 밀치고 당기느라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의 단잠을 깨웠던 적도 있었다.
이뿐인가! 봄철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벌떼가 몰려와서 꿀을 만들어갔다. 또 간간이 벌새가 날아와서 맛있는 꿀물로 목을 추기고 간다. 그리고 반갑지 않은 진딧물도 가끔씩 나타나 자기 몫을 열심히 챙길 때도 있었다.
새가 위 부분을 먹고, 사슴은 아래를 먹고, 다람쥐가 먹다가 배불러 남긴 중간 부위의 과일들이 이제 내 몫으로 남겨졌다. 재수 좋게 남겨진 과일, 빨갛게 잘 익은 대추 한 알을 입 속에 넣어본다. 달디단 맛을 음미해 보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본다. 한 그루의 나무가 얼마나 많은 동물들과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가를! 우리는 나눔의 동산 안에서 사이좋게 서로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최희주(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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