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가 내려다보이는 병원 입원실 병상에 누워 있는 나에게 딸이 장미꽃 한 다발을 사 가지고 와서 유리창가에 꽃아 놓는다. 흰 꽃, 분홍 꽃, 다홍 꽃, 모두가 아름답다. 꽃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속삭이며 지나간 옛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나는 젊어서부터 꽃을 아주 좋아했다. 해방 전 중국 북경에서 교수로 있던 남편이 일본 헌병대에 붙들려가서 여섯 달이나 옥고를 치렀다. 죄인즉슨 상해에 있는 한국 임시 정부와 연락이 있다는 것이었다.
6개월 뒤에 평양으로 호송한다는 소식을 듣고 집도 팔고 가산처리도 한 후 평양으로 나가서 시댁에서 살기 시작했다. 시댁은 평양 경상골 언덕 위에 있었는데 시아버님이 꽃을 몹시 좋아하셔서 여러 100 평되는 넓은 마당에 얼마나 꽃을 많이 심으셨는지. 아래 동리 아이들이 우리 집을 ‘꽃집’이라고 불렀다.
해방 후 서울로 와서는 신설동의 조그만 개량주택에 살면서 앞마당의 손바닥만한 땅에 상추랑 쑥갓이랑 심어 먹었다. 나는 꽃만 가득 심고 싶었는데 시어머님이 먹을 것도 심으라고 하셔서 가운데는 먹을 것을 심고 가장 자리에는 봉숭아와 백일홍을 심었다. 그후 연희동으로 이사를 하니 마당이 넓어서 꽃 기르기에 좋았다.
대한여학생협회 직책을 맡아 사회활동을 했을 때 한번은 세계여성단체회의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한국의 대표로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관광차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들렀다. 예수님 무덤 앞에 핀 꽃을 보고 기념으로 몇 가지를 꺾어서 젖은 물수건에 고이 싸서 가지고 와서 길러 번식시켰더니 교회의 장로님들이 모두 나눠 달라고 해서 드렸던 생각이 난다.
지금 남편도 떠나가고 아이들은 모두 LA에 유학왔다 주저앉아 나 혼자 서울에 살 재미가 없어 사시사철 꽃이 피는 LA로 왔다. 노인 아파트에 살면서 그래도 꽃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서 아파트 창가에 긴 탁자를 놓고 좁은 공간이지만 제라늄과 베고니아 종류를 기르고 가을에는 포인세티아를 많이 길러서 크리스마스에 친한 친구들에게 선사한다.
나는 전생에 꽃이 변하여 내가 되었는지 일생동안 꽃을 사랑했다.
주자혜/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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