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세월 넘나들며 부르는 러시아-유럽의 송가
상영시간 87분 전체 장면을 컷이나 편집 없이 단 한번의 촬영으로 마친 기술적 개가의 작품이다. 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이은 러시아의 최고 감독 중 하나인 알렉산더 소쿠로프(‘어머니와 아들’)의 영화로 촬영감독은 독일인 틸만 뷔트너.
두 사람은 고선명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로 꿈처럼 몽환적이요 뱀이 소리 없이 움직이는 듯한 유려한 트래킹 샷을 구사,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허미티지 뮤지엄 내 복도와 살롱을 헤엄치고 다니며 러시아와 유럽의 역사에 관해 명상하고 있다.
영화는 러시아와 유럽의 진귀한 미술품의 보고인 허미티지 뮤지엄 내 33개의 방에서(한 차례 눈 덮인 밖으로 나간다) 찍었는데 2,000여명의 배우와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단순한 기술의 대가적 솜씨의 경지를 초월한 심미적이요 노스탤지어 가득한 러시아와 유럽의 지나간 영광에 대한 송가이기도 하다.
주위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우리와 동시대의 영화 감독(소쿠로프의 모습은 안 보이고 그의 중얼대는 목소리만 들린다)과 위트 있고 냉소적인 19세기 프랑스 외교관(세르게이 드라이덴)이 마치 마법에 의한 것처럼 허미티지에서 만나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면서 대화하고 논쟁하며 그림과 조각의 아름다움을 찬탄하고 또 그것들을 통해 서양사를 얘기한다.
18세기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300년의 시간대를 넘나들며 두 사람은 러시아와 서양사를 편력하면서 실제 인물과 과거 역사의 주인공들을 만난다. 피터 대제와 캐서린 여제도 만나고 마지막에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와 그의 가족들도 만난다.
마지막 장면은 러시아 혁명 직전인 1913년 황궁 대연회장서 있었던 무도회로 장식된다. 야회복으로 정장을 하고 화려한 치장을 한 수백명의 남녀들이 마주르카를 추는 이 장면은 호사와 장엄미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리 게르기에프(LA필 무대에도 가끔 선다)다.
무도회가 끝나고 연회장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카메라가 가까이 따라가다 먼저 떠나듯 사람들을 멀리서 잡으며 물러서는 마지막 장면이 압도적인 비감미마저 풍긴다.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나 영혼이 부유하는 것 같은 황홀한 영상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Wellspring.
16일까지 뉴아트(310-478-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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