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잠자고 있다’
우리는 잠꾼들이다.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세계를 감지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자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여류작가이자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말이다.
1926년에 태어나 73년 로마에서 불의의 사고로 불과 47세의 나이에 숨진 바흐만은 2차대전후 극도의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독일문단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 여류작가로 ‘삼십세’등이 한국어로 번역되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유명한 싯귀의 시인이기도 하다.
그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수십년전 지적한 ‘잠자는 이유’는 오늘날 무기력증에 처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보여주고 있다.
’우리를, 우리의 세계를 감지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자고 있다’는 바흐만의 말은 지금 예술가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얼마나 부끄럽게 ‘자기만의 거실’에 안주하고 있는지를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시대중에서 요즘처럼 예술가의 모습이 초라하게 위축되었던 때가 있을까.
시대와 세계는 점점 살벌하고 메마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예술가들의 포효나 절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근현대를 통틀어 시대의 맨 앞에서 선지자의 목소리를 외치며 예지로 가득찬 작품들을 쏟아냈던 그 빛나는 문학적, 지적 전통이 지금 이 시대에도 과연 이어져오고 있기는 한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 정도로, 지금 예술가나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너무 적고 위축되어 있다. 대 서사담론이 없는 작품이 그렇다는 것이다.
스탕달, 도스토예프스키, 안톤 체홉, 카뮈, 헤겔, 니체, 베토벤, 고흐 등 그 많은 훌륭한 예술가, 철학가들은 시대의 파도에 몸부림치면서도 언제나 작품을 통해 인간영혼에 육중한 빛을 던졌고 그 빛은 암울했던 시대의 야만과 맹목을 일깨우곤 했었다.
한국에서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최인훈, 김승옥, 황석영, 김수영씨등 상당수 작가들의 작품에서 시대의 코드를, 절망을 느낄수 있었고 그리하여 그들이 던지는 빛의 무게는 결코 간단치않게 한국 젊은이들의 영혼과 정신에,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개안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예술가들은 더 이상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텔리겐차도, 주류도 아니며 ‘데코레이션’으로 전락한 느낌마저 갖게 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대선 과정에서 사회의 변화, 시대의 변화를 표방하는 기획특집등이 한창인데 ‘온라인과 오프라인’ 통틀어 예술가들의 목소리도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명품족’과 ‘아파트값’, ‘보수-진보’, ‘네티즌-수구’등의 단어에 짓눌린채 예술가들은 어디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지 신음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그 의미의 심각함에 비해 예술가들의,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CNN이나 폭스뉴스채널등에서는 벌써 1년이상 ‘전쟁 시뮬레이션’ 방송을 해오면서도 정치인, 정치칼럼니스트, 교수들을 끊임없이 섭외해 대담코너등을 진행하면서도 눈에 뜨이는 지성들의 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죽은 예술가들의 사회’에 가장 유명해진 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로 갑자기 거부가 된 작가 조앤 롤링이며 시대를 이끌고 가는 것은 뉴욕증권시장과 정치 테크노크라트, 그리고 빌 게이츠 같은 대기업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이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시대속의 인간은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헤밍웨이나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같은 작가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 어리석은 시대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알코올중독이 되어가며 적어내고 있는 예술가는 어디 있는가.
예술가가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지못하고 데코레이션으로 전락해버린 지금의 이 시대는 야만의 시대다.
김정빈<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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