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대통령 취임식과 함께 노무현 시대가 공식적으로 열렸다. 노무현 시대의 개막은 오랜 군사 독재와 3김 시대의 청산과 함께 전후 신세대가 한국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압도적 국민 다수가 ‘노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 것’이라며 앞날을 낙관하고 있다. 새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희망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국내외 정세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리라고 기대하기에는 험난한 요소들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은 한국의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20~40대의 폭넓은 지지를 업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정치에 무관심하던 젊은 세대가 참여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로 인해 한국 사회는 전통적인 지역 감정에다 세대간의 알력이라는 새로운 갈등 요인을 안게 됐다.
그러나 미주 한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핵 개발을 둘러싼 한미간의 의견충돌과 여중생 사망을 계기로 한국 내 널리 퍼지고 있는 반미 감정이다. 한미 관계가 과거의 일방적 의존 관계에서 한국의 성장에 걸 맞는 동반자적 수평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관계 변화를 추구하는 방법과 태도이다. 해방 후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이 한국의 평화와 경제적 발전에 기여한 역할을 무시하고 성조기를 불태우는 식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할 것이며 미국 내 반한 감정만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미 관계의 악화는 미주 한인들에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주겠지만 장기적인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200만 미주 한인들이 이 문제를 걱정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북한 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단지 북한이 끝내 핵 사찰을 거부하고 핵 포기 대가로 끊임없는 뒷돈을 요구할 경우 언제까지 한미 양국이 북한의 요구에 끌려 다녀야 할 지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50년 간 한반도 평화를 가능케 한 것은 북한의 선의가 아니라 굳건한 한미 동맹 관계였다. 이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노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한번도 미국에 와 본 일이 없다. 미주, 더 나아가 해외 동포 전반에 걸쳐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지금까지 특별히 드러난 바가 없다. 정치, 경제, 외교 등 온갖 현안이 산적해 있는 노 대통령으로 볼 때 재외 동포 문제는 2차적 관심사일수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600만 한인들은 수적으로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주 한인 문제에 관해서는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깊은 이해와 관심을 보여줬다. 본인의 오랜 미국 생활과 비서실장과 장관 등 요직에 미주 한인 출신 인사를 널리 기용한 탓도 있겠으나 어쨌든 임기 중 미주 한인들에게 한 국민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한 재외 동포법을 마련하는 업적을 남겼다. 위헌 판결로 폐기될 처지에 놓인 이 동포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노 대통령의 해외 한인에 대한 생각을 읽는 지표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중대한 전환점에 와 있다.
지도자가 발을 잘 내딛느냐 못 내딛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좌우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내 모든 지역과 계층은 물론 해외 한인들의 목소리에도 고루 귀를 기울여 세계 속에 우뚝 설 21세기 부강한 한국의 초석을 놓는 위업을 이룩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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