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창시자인 부처님은 참으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6세기경 현재 네팔지역인 조그만 카팔라왕국의 왕자였습니다. 그는 삶과 죽음, 고통의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이세상 자체가 바로 고통이라는 진리를 터특하기에 이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고통은 일상적인 의미의 고통이 아니며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의미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통의 원인과 극복은 부처님께서 알아낸 것일뿐 부처님께서 만들어낸 것은 아닌 것입니다. 즉,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그는 인류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의사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궁극의 경지인 해탈은 비전의 교리나 고도의 고행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지적인 수련만 가지고는 삶과 죽음의 절박한 문제를 해셜할 수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적인 학습뿐만 아니라 엄격한 금욕생활도 요구합니다.
부처님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 그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가르쳤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사성제와 팔정도이며 이 두가지는 지금까지 불교의 어떤 분파에서도 한결같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적인 이해만으로는 도달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활속에서 실천되어야만 고통과 무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도 모두 고통에 힙싸여 있다고 합니다. 불교의 모든 경전은 고통의 근본원인과 고통의 해결방법에 대한 지침서라고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초기 경전은 여러 가지 고통을 조목조목 제시했업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르면 고통의 해결방법 또한 고도의 전문적인 수련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중에는 고통을 느끼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표현하면 늘 고통과 함께 하면서도 자신은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것에 불과 합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할 일도 해야할 일도 많아 늘 정신없이 바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불안해 합니다.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고 부처님은 말합니다. 부처님은 빈,부,귀,천,행,불행은 늘 인간과 함께 해 왔다고 말합니다. 대개 사람들이란 나쁜 것은 거부하고 좋은 것만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좋고 나쁜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세속에 살면서도 이를통해 끊임없이 마음을 단련합니다.
부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 보라"입니다. 잇는 그대로 보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길입니다. 괴로움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기만하면 이미 고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합니다.
그런데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고통의 원인은 무명에 있으며 무명을 없애기만 한다면 고통은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즉 부처님은 세상을 인식하기만 하면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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