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태양’이라…
비가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곳에서 “쨍”하고 뜨라고 붙여준 애칭. 이제 와서 보면 한국농구 사상 처음으로 미국 무대에 진출한 정선민(시애틀 스톰)의 훗날을 기가 막히게 점친 표현이었다. 지난 5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종합 8번으로 스톰에 지명돼 WNBA 진출의 꿈을 이룬 기쁨도 잠깐, 유니폼에 ‘SUN’이란 이름을 달고 뛰는 정선민에게는 해뜰 날이 없기 때문이다.
첫 슛을 블락 당한 첫 경기에서 3분, 첫 골을 넣은 뒤 부상당한 2번째 경기에서 8분, 3번째 경기는 그로 인해 결장, 4번째 경기에서는 7분만에 1골에 1리바운드, 5번째 경기에서는 파울만 2개, 6번째 경기에서는 승부가 이미 판가름난 경기 막판 6분을 뛰며 1골에 1리바운드. 한국 선수가 왔다는 소식에 기껏 응원하러 간 시애틀 한인들이 응원할 기회조차 없을 정도로 정선민은 WNBA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초라하다.
WNBA의 벽은 과연 한국 여자농구의 간판스타가 넘지 못할 정도로 높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한국여자농구를 세계 4강으로 끌어올린 정선민의 득점력은 그 누구나 다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를 살릴 수 있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수비가 약하다” “스피드가 느리다”는 지적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정선민의 장기는 잡자마자 쏘는 ‘캐치&슛’이다. 느린 것도 수비가 약한 것도 다 사실이지만 어차피 수비가 좋거나 개인기가 화려해 데려온 선수는 아니다. 따라서 선수가 쉴새없이 상대 디펜스를 휘젓고 다니며 빈틈을 찾아내거나 앤 다나븐 감독이 세트플레이로 선수가 ‘명사수’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둘 다 되지 않고 있다. 정선민을 활용하기 위한 세트플레이도 보이지 않으며, 정선민이 기껏 빈틈을 찾아내면 패스를 해줘야 할 공을 가진 동료들의 시선이 다른데 가 있어 김만 빠진다.
스톰에는 로렌 잭슨을 빼면 한국 여자프로 농구 구단에서 용병으로 원하는 선수도 없고, 정선민 만한 슈터도 샌디 브론델로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선민은 최근 자신의 공식홈페이지(www.sun17.com)에 “마음이 무거워서…”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요즘 나에 관한 신문기사들이 힘들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는 것 같다. 주위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느낀다” 면서“WNBA에서 7∼8분을 뛰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진다니 속상하다. 미국에 오기 전 분명히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라고 말했다. 또 “한국에선 항상 주역이 되어 코트를 뛰었지만 이젠 아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 동안 하지 못한 농구를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상의 코트에 서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정선민의 성공여부는 자신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WNBA 진출을 원하는 한국 후배들의 길까지 막는 것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됐을 당시 들썩였던 “신장 열세를 만회하느라 모션 오펜스를 구사하는 동양 선수들은 WNBA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잠재워야 한다.
정선민의 동료들에 따르면 정선민은 사람만 좋다고 하는데 “맡겨주면 꽂겠다”고 끊임없이 호소할 정도로 뻔뻔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규태 기자>clarkent@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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