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요즈음 넥타이가 많이 팔린다고 한다. 경기가 나쁠 때면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넥타이 판매량 증가라고 한다.
경기와 넥타이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한 패션 연구소의 분석은 이렇다. 경기가 침체하면 근무 기강을 세우기 위해 직원들에게 넥타이 착용을 강조하는 기업들이 늘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는 복장부터 단정하게 해야 정신적 해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장의 긴장이 정신의 긴장으로 연결되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바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복장의 해방은 정신의 해방으로 연결된다. 여권운동 하면 브래지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런 이유와 관련이 있다.
60년대 과격 여성운동진영은 시위 때마다 브래지어, 거들, 하이힐등 여성의 몸을 옥죄는 것들을 벗어 던져서 매스컴의 시선을 끌었다. 억압된 여성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무관심한 대중의 관심을 모으려다 보니 선동적 시위를 하게 된 측면도 없지 않다.
여권운동진영의 ‘복장 해방’시위가 정말로 사회적 논란이 된 것은 그보다 100년쯤 전이었다. 19세기 중반 여권 운동 선구자들은 ‘블루머’라는 혁신적 의복을 만들어 냈다. 스커트를 무릎 길이로 짧게 만들고 그 밑에 통 넓은 바지를 받쳐입는 차림이었다.
당시 여성들의 복장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영화에서 많이 본 집채만한 드레스. 허리는 숨도 못쉴 정도로 졸라매고 치마는 골조를 넣어 한 방 그득 부풀려서 “옷이 아니라 차라리 감옥”이었다.
하지만 활동성에 중점을 둔 블루머에 대중은 경악했다. 당시 정서로는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했다. 교계는 “여자가 남자차림을 하다니… 사탄의 소행이다”고 탄식했다.
여권운동가들의 바지 착용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내 몸에 걸치는 옷 하나라도 내 마음대로 하려면 보통 주관이 뚜렷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당시 여성들은 절감했다.
96세로 사망한 영화배우 캐서린 햅번은 여배우 같지 않은 여배우라서 존경을 받았다. 남의 눈이나 인기를 의식하지 않고 평생 자기 자신으로 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뚜렷한 주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 그의 복장. 보통 여성들이 바지는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에 그는 바지에 남방셔츠, 단화 차림의 자유로운 복장으로 늘 당당했다. 20세기 여성이면서 21세기 여성들에게도 여전히 해방을 가르치던 진정한 페미니스트로 그는 기억에 남을 것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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