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좀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일어나 수영 가자며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 더 누워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그것도 얼마 전부터 약속한 일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게으름을 피워왔다. 이제 더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워낙 운동에는 취미도 재주도 없었다. 더군다나 외간 남자도 있는 곳에서 벗어제껴야 하는 수영은 꿈도 안 꾸던 것이다. 젊었을 때 어쩌다 친구 따라 해수욕장 가서도 그냥 옷을 입고 있었던 나였다. 그래서 난 아직 나의 몸매를 한번도 자랑해 보지 못하고 젊음을 다 보냈다. 그런 나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남편은 집 근처 수영장에 몇 년을 혼자서 다니고 있다. 가끔씩 부부가 같이 다니는 친구가 부럽다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내과 의사를 수영장에서 알고 부터는 나에게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40대 이후엔 어떤 운동보다, 또한 아무리 건강에 좋다는 약보다도 수영이 최고라고 했다. 남편은 신문, 잡지에 난 수영이 좋다는 기사를 오려와 내 앞에 들이밀기도 했다. 나도 무슨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얼마 전에는 회사 일로 한국에 갔다 오면서 물안경과 수영복까지 선물로 사왔다. 그런 남편의 유난스런 권유로 수영장을 찾게 된 것이다.
남편은 저쪽 탈의장으로 갔다. 나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대부분인 초급반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는 블라우스 단추도 목 밑까지 꼭꼭 채워야 했다. 그런 내가 다리와 팔을 온통 드러낸 수영복을 입고 수영 선수들이 쓰는 수영모 안으로 머리칼을 말아 넣고 거울 앞에 서 보니 자랑할 수 있는 몸매였다. 남편 앞에 이런 늘씬한 몸매를 한번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의 충동이 일어났다. 결혼 생활을 해오면서 남편이 가끔 나의 나신을 보고싶어 했지만 아직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젠 이 날씬 한 몸매를 보여주고 싶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 다 늙어 주책도 세련되었구나 하면서 나는 수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휘황한 조명과 물의 감각에 온 몸을 맡기고도 이렇게 편안하고 즐겁다는 것은 거의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나는 물에 떠서 비록 물장구 기는 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수영은 의외로 상쾌했다. 잠시 후 수영 강사 선생이 왔다. 웃통을 벗은 젊은 강사의 몸매를 바라보는 눈도 괜찮았다. 이런 맛에 남자들이 반 나신의 여자들을 흘깃흘깃 쳐다보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몸매가 좋으신데요. 수영을 잘할 것 같습니다."
젊고 잘 생긴 강사의 친절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정말 내 몸매가 괜찮은 몸매인 모양이다. 이런 몸매를 왜 한번도 자랑하지 못하고 젊음을 보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나는 강사의 지도에 열심히 따라했다. 수영은 재미있고 강사의 친절에 매일 수영장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제 오후부터 간헐적으로 치통이 있었다. 그러다 잠을 자면서 수영을 하다 보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치아에 다시 통증이 왔다. 나는 급히 수영장을 나와 차로 갔다. 남편은 벌써 나와 있었다.
"수영이 재미있었던 모양이지?"
"네, 아주 상쾌하고 좋네요."
"빨리 초급반을 면해서 같이 수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남편은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운전을 한다. 나도 그동안 숨겨온 몸매를 자랑하고 싶은 시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아침에 출근을 하고 나니 치통이 더 심해져 조퇴를 했다. 통증이 심해 가족들이 가는 치과까지 운전을 못할 것 같았다. 얼마전 집 가까이 새로 개업한 치과를 찾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욱신거리는 두통은 멎지 않았다. 나는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손으로 아파 오는 턱을 감싸고 고개를 숙이고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을 때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간호사의 지시대로 치료 의자에 앉았다. 턱받이를 해주고 그녀가 조종하는 대로 뒤로 눕혀졌다. 의자는 편안했다. 아픔이 다소 가시는 것 같았다. 치료하고 나면 오후엔 수영을 갈 수 있겠지. 따뜻한 물 속에 잠겨 온 몸을 흔들면서 앞으로 나가는 재미가 좋았다. 그리고 그 수영강사의 가슴에 솟아있는 털이 매력적이고 보고 싶었다. 나는 치료를 받고 진통제 약을 사서 먹었다. 치통은 거짓말처럼 멀리 사라졌다.
나는 저녁 하기전 수영장을 찾았다. 수영강사가 나와 오늘은 좀더 앞으로 나가게 해 주었다. 수영 강사가 옆에서 가끔 나의 몸매를 잡아 줄 때마다 이상야릇한 쾌감이 들었다. 이런 느낌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불륜이 이런 감정 속에서 새로운 사랑의 불씨를 지피는 것 같았다. 나는 잡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수영을 열심히 했다. 두 팔을 쭈욱 피고 발을 오그렸다 폈다 하면서 물살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갔다. 수영 강사는 그런 나를 지켜보면서 잘 한다고 손뼉까지 치고 있었다. 나는 수영 강사가 곁에 오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마음은 곁으로 가고 싶으면서 몸은 자꾸 멀리 떠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만 수영을 해갔다. 수영강사는 내가 저만치 가면 즉시 나의 곁으로와 팔 움직임과 몸 자세를 수정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하고 보니 기운도 없고 숨이 차 물 밖으로 나왔다. 수영강사는 왜 빨리 가느냐고 했지만 난 못들은 척 하고 나왔다. 나는 화장실에 들렸다 샤워 룸으로 갔다. 수영강사와 한 남자와 저 만치서 걸어가고 있었다. 수영 강사가 옆 친구한테 하는 말이 나의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그런 장작개비 같은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 누군지 정말 불쌍해. 여자는 그래도 좀 나올 곳이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그런 몸매가 좋지. 그 여자 다시 오면 나 도망 갈 거야."
"그래도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금방 들은 수영강사의 말에 속에서 와글와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얼굴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눈물과 섞여서 흘러내린다. ‘내 수영장에 다시오나 봐라.’ 나는 급히 나와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저쪽 탈의장을 향해 한마디 내어 뱉었다. ‘잘 났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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