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러지는 것들은 아름답다’고 했던가...날과 날이 모래알인 양 슬금슬금 빠져 달아나고 있다. 이즈음엔 스러지는 하루의 아름다움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테스의 모습처럼 처연하게 여겨지곤 한다. 요컨데,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제대로 감지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객지살이란 것이, 더욱이나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뚜렷한 성과 없이 어딘지 모르게 허둥거리며 흘러가는 나날을 안타까이 보고 있는 듯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혼자 창밖을 내다보는 저녁쯤이나 되어서야 여유 내지는 여백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을 만난다. 묵화처럼 부드럽게 스며든 저녁. 왠지 다정하고 익숙한 길섶 같은 느낌으로 가슴을 채워오는 그런 저녁이면 모든 하던 일과 잡념들을 밀쳐두고 잠깐 평온한 기분에 몸을 맡긴다.
서울에 있을 때 이따금 혼자서 한강을 찾곤 했다. 집에서 많이 가까운 이유도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사람의 발길이 분주하지 않았다. 서걱서걱 몸을 부딪는 억새나 야생화가 무성한 것도 아니고, 고즈넉한 긴 강둑이 이어진 것도 아니였다. 별 보잘 것 없는 차가운 시멘트 냄새가 나는 곳이었는데, 몇 번 가게 되면서 그곳의 황량함이 마음을 잡아끌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가득 차고 부요하고 풍성한 것보다는 애잔하고 비틀리고, 버려진 것들에 더 마음이 쓰이고 애착을 갖게 된다. 무엇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데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화려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이들보다는 실패한 사람들, 이런 저런 이유로 떠돌아다니는 이들, 세상에 깃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선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나 역시 부랑아 기질이 있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해 본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더 선하다거나 순수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때로는 더 이악스럽고, 배부른 졸부들보다도 무서운 이기심을 드러낸다는 것을 앎에도...
여하튼 아무도 모르게 나는 한 차례씩 ‘내 강’을 보러가곤 했다. 나한테는 그 강이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한국에서 일 할 무렵, 답답하고 꽉 찬 지하철에 매달려 출퇴근을 할 때마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갈등과 함께 그곳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창백한 불빛이 내리꽂히는 긴 지하도를 걷는 것은 특히 싫었다.
그렇게 기분이 우울해질 때마다, 뭔가 견디기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강이 떠올랐다. 거기 일렁이던 바람과 물비린내, 달려드는 자동차들을 삼킬듯이 정면에서 눈을 부릅 뜬 따갑던 태양까지... 그러면 신기하게도 누군가에게 위안을 받고 있는 듯한 마음이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겐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문명이 우리에게 쓸 데 없는 군더더기를 덧입혀 놓아 이것저것 탐욕스럽게 긁어모으도록 길들인 것일 뿐, 정말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아주 작은 위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따금, 내가 가진 것 중에서(아끼는 것 중에서) 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를 꼽아보곤 하는데, 의외로 버릴 만한 것이 적어서 ‘너는 아직 멀었다.’고 스스로에게 면박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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