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물만 9병 마셔요”
▶ 발로 뛰는 한인 안영덕 후보
"골목 골목을 발로 뛰고 있습니다. 하루에 물을 9병씩 마셔가면서 말입니다. 한국 민족의 위상을 높이고 2세들의 미래를 위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주민들의 성원을 보면 당선을 확신합니다."
오는 11월에 있을 훼어팩스 카운티 메이슨 디스트릭 수퍼바이저 선거에 출마한 안영덕(58.사진)씨.
4년전 오하이오주 콜럼비아서 라우든 카운티로 이사와 살다 얼마전 폴스 쳐치로 거처를 옮겨 훼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 선거에 출마했으니 주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직 한인사회에서는 ‘뉴 키드 온 더 블록’으로 통할 수 밖에 없는 그가 당선을 자신하며 불철주야 표밭을 누비는 것은 긴박한 상황에서 오히려 전투력을 발휘하는 비법을 터득한 때문인지 모른다.
충북 괴산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괴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북대에 재학중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1966년 이등병의 비린내 나는 계급장을 달고 해병 청룡부대에 합류, 월남으로 향했다. 그해 음력설날 밤에 벌어진 전투에서 그는 거의 죽음을 맛봤다. 적의 기습을 당해 육박전을 벌인 끝에 소대원 36명중 12명만 살아 남았다. 안씨는 "그 때 배짱과 용기를 배웠다"고 말했다.
월남서 돌아온 후 이민을 결심했다.
취업비자를 얻어 1974년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을 밟았다. 벨 보이로 일을 했으나 이 일은 아니다 싶어 본토로 들어가기로 했다.
1976년 뉴욕에 도착한 그는 건물에서 인체에 유해한 석면을 제거하는 일이 큰 호황을 누리고 있음을 알고 뛰어들었다.
"50-60층 건물에 100여명의 일꾼을 풀어놓으면 감독하기가 어려워 일이 엉망이 되기 쉽습니다. 저는 담요 두 장 들고 들어가 그곳에서 먹고 자며 독려했습니다. 유대인 건물주의 신용을 얻었지요. 여기 저기 소개가 들어왔고 저는 광고 한 번 안하고 많은 일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안씨가 수퍼바이저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알자 그와 함께 일하던 뉴욕 한인들은 후원의 밤을 열겠다고 자청했다.
그러나 이 일도 1990년대 초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그는 오하이오주 콜럼비아로 이주해 개발업에 종사했다. 이곳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스윗홈 부동산)을 하고 있다.
"애난데일은 한인사회의 심장아닙니까? 여기서 한인 수퍼바이저가 나와야 합니다.
저의 선거 공약은 노인 문제와 교육, 그리고 세금으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메이슨 디스트릭에만 5만2,000여명의 노인들이 시니어센터에 등록돼 있지만 서비스를 받는 숫자는 2천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다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이미 구상하고 있습니다."
훼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 선거가 처음 실시된 1746년 이래 최초의 동양인 후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가진 안씨는 "민주사회에서는 숫자가 힘인 만큼 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원과 관심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후원문의:(703)622-5826.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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