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여러 사찰의 주지 자리 싸움에 끼어 들도록 권유와 유혹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아니 꿈에도 고려해 보지 않았던 것은 입산 초기에 세웠던 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치러야 했던 따돌림과 불이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나,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나를 키우고, 내 원을 성숙시켜 가는 데 커다란 힘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이 것은 석용산 스님이 쓴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수필집(고려원 302쪽 초판 1992년)은 지난 20여년간의 여러 베스트 셀러 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고 지속적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스님이 입산하게 된 연유와 그에 얽힌 갖가지 갈등, 가족 문제, 개인적인 문제, 입산 이후의 고난, 오늘날 한국 사찰의 문제점, 산 속 생활을 거부하고 일반 시중에 나가 대중들을 상대로 한 포교 생활, 해외 교포 등에 관련된 짧고도 명료한 수필 50 여 편이 들어 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종파 창립의 갈등"이라는 다소 긴 수필 속에서 따온 것이다. 책의 뒷 부분에 들어 있으나 나는 이 글이 스님의 종교 철학과 바람직한 포교의 방향, 인생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다.
약 4 페이지에 걸친 이 에세이는 나에게 참된 종교와 신앙의 길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또 내가 늘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것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어 큰 감동을 받았다.
종교라는 이름의 사회 제도와 그 구조 때문에 또 성직자와 신도들의 빗나간 행동으로 인하여 본래의 가르침은 간 데 없고 감투싸움, 물질주의, 화려하고 거대함의 과시, 다른 종교나 종파를 무시하고, 전쟁하고, 대량 살상 등을 자행하여, 세상은 또 얼마나 무서운 곳이 되어 왔는가? 이런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스님은 말한다. “한 평생을 길거리에서 중생을 보살피시다 길에서 돌아가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온데 간데 없고, 산 속에서 방석만 지키고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분들이 오히려 부처의 부처가 되는 묘한 불교와 함께 이 나라의 불교는 작금의 상태를 맞이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예수님의 처음 가르침과 원래의 행적은 지금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가를 반문하게 된다.
스님은 신도들에게도 경고한다. “절에 오는 신도들마저도 구도 정신에 입각한 자기 성숙의 몸부림은 접어두고, 줍쇼 줍쇼 하는 거러지 정신이 쌓여 오늘의 불자 모습을 만들고 말았다." 이 말씀은 오늘 날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근대 철학자로 성인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류영모 선생은 16세에 기독교인이 되었으나 오늘의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과 길을 완전히 벗어난 것을 보고 교회 출석을 그만두었다. 종교와 철학에 조예가 깊은 윤대규 교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아직도 유치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개탄했다. 자기가 나가는 교회, 자기 교파가 아니면 모두가 다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고 한다.
또 하느님은 천상이나 외계의 어떤 곳에서 왕관을 쓰고 앉아 세상의 모든 사람의 행동과 운명을 조종하고, 바람을 일으키고, 꽃과 새를 만들어 내는 등 끝없는 능력과 운명 결정의 주체라고 믿는 비합리적이고도 미신적인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나와 나의 가족만의 행운을 빌고 비는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면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신앙 생활은 과연 어떤 수준에 있는가? 신앙과 철학과 과학을 다 같은 것으로 인정하고, 통합하여 이해하며 보람있는 삶을 추구하고 있는 신자들은 얼마나 될까?
하여튼 석용산 스님은 책 속에서 현재의 한국 불교를 은둔 생활에 맞게 짜여진 산 속 불교, 전문인만을 위한 어려운 불교, 복을 빌러 오는 이들이 모이는 기복 불교의 장소 제공처로 보고 있다. 입산 초기부터 이 점을 절실히 느끼고 무언가 새로운, 불교의 참된 길을 찾아왔다. 이 것을 그는 그의 원(wish, 바람,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산 속의 스님 생활을 거부하고 시중에 포교당을 만들어 중생들의 애환 속에서, 어려운 분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왔다. 이 과정에서 선임자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시도 받고, 경제적으로 그리고 인간 관계 면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어 왔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궁극적인 목표, 즉 이 시대에 맞는, 한국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불교, 새로운 종파의 창립이라는 원을 위해 굳건하게 정진하고 있다. 스님은 이러한 새로운 불교 창립의 과정의 하나로 "스님들의 재교육과 구도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 장치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것은 미국의 학교 교사들이 방학 등을 이용해 정규적으로 대학에 돌아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교육 정신의 재충전을 하게 하는 제도를 생각하게도 한다.
스님의 중심 되는 철학과 사상, 즉 이 시대에 맞는 신앙, 산 속의 큰 절이나,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당 속에서의 신앙이 아닌, 대중들의 생활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성직자들이 되는 신앙이 참된 신앙이라고 생각된다. 권위주의와 거대주의, 물질주의, 자기의 신앙만이 유일한 것이라는 많은 신자들의 잘못된 종교관과 신앙 생활에 경종을 울려주는 책이었다.
/애팔래치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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