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일일이 읽어볼 수는 없고, 에이전트가 시키는 대로 팔이 아프도록 사인만 하고 나니 괜히 찜찜하더군요”
LA의 직장인 K씨가 얼마전 주택 모기지 재융자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느낀 불안감이다.
수십장 서류에 내용도 모르고 서명을 하고 나면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은 한인 1세 대부분의 경험. 자동차 구매, 아파트 렌트, 주택융자, 법률 서비스, 보험 구입 등 웬만한 일에는 모두 서류들이 따라 붙는데 깨알같은 영어가 빽빽하게 쓰인 서류뭉치를 보면 “주눅부터 든다”는 사람들이 많다. K씨는 말한다.
“서류 한 구석에 예를 들어 페이먼트가 한달 늦으면 집을 차압한다는 구절이 있다하더라도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사인을 했었을 거예요. 미국 와서 살다보니 가끔 멍청이가 된 느낌이 에요”
그 정도로 악의적인 일이야 없겠지만 ‘영어 까막눈’을 악용하는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봄 자동차를 새로 구입한 L씨의 경험.
“한참 흥정을 한 후 계약서에 사인을 했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찬찬히 서류를 보니 이자율이 세일즈맨과 얘기했던 것보다 높게 적혀 있는 거예요”
캘리포니아 이민자들은 조만간 이런 ‘영어 설움’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등 외국어로 흥정을 했을 때는 계약서도 같은 언어로 작성하도록 규정하는 법이 곧 제정될 전망이다. 중국계 주디 추 주하원의원이 제안한 법안이 주의회를 통과했고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다른 법안과 연계되어 있어서 100%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캘리포니아는 이민자 천국이라고 할 만 하다.
캘리포니아가 원래 이민자 천국은 아니었다. 한인들이 아직 발을 들여놓기 전인 19세기 후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골드러시 시절 캘리포니아는 외국인 광부 세금법이라는 것을 제정했다. 중국인들이 금을 캐서 부자가 되는 것이 배가 아파 만든 법이었다. 미국 시민이 아닌 사람이 금을 캐려면 라이센스가 있어야 하도록 규정했는데 그 절차가 너무 길고 비싸서 대부분 중국계 광부들은 탄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 해역 낚시 관련법이란 것도 있었다. 1880년 제정된 이 법은 외국인인 경우 생선이나 랍스터, 새우등 해산물을 잡아서 팔거나 남에게 줄수 없도록 규정했다. 당시 중국인들이 수산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어서 생긴 법이었다.
캘리포니아가 이민자들의 모국어까지 배려한다는 것은 이민 커뮤니티의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이다. 중국계가 아니라 한인 주도로 법이 제정되는 날도 곧 도래해야 하겠다.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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