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지나다 무심코 쇼 윈도우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흔히 하는 말로 ‘쇼 윈도우를 볼 때 남자는 진열된 물건을 보고 여자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고들 한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에, 또 충동구매의 가능성을 줄이고자, 쇼핑을 할 때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쇼 윈도우를 쳐다보는 행위를 삼가(?)는 편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봐서 더욱 그랬겠지만 오늘 쇼 윈도우 한켠에 떠오른 내 모습과 마주친 순간 작은 충격이 뇌파를 흔들었다. 우두커니 무표정한 어정쩡함으로 서 있는 마흔, 쉰, 혹은 그보다 더 늙은 한 여자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진열창 안의 화려하고 멋지게 디스플레이 된 의상들, 그 틈새를 비집고 살짝 들어온 파란 하늘 한 조각, 생기 넘치는 거리풍경이 떠다니는 사이에 서 있는 ‘그 여자’의 모습은 부조화 그 자체였다.
낯선 현기증 - 아주 잠깐 동안 나조차도 그 모습이 나라는 생각을 못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한 순간 나는 보았다. 그 모습 속에 되비친 어머니의 환영(幻影)을... 쇼 윈도우 속의 여자는 내 안에 감추어진 또 다른 나였다. 내 안의 그녀를 감지하고 그만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다.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란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자신의 몫은 최소한 줄이고 줄여가며 남편과 자식에게 다 내어주던 어머니께 미안해하고 감사하기보다는 그런 어머니와 함께 하기를 부끄러워했고, 걸핏하면 ‘엄마, 왜 그렇게 궁상을 떨어요?’ 라며 건방진 소리를 내뱉곤 했다.
스스로의 철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정작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내가 어머니를 비판하며 까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어머니의 품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안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가끔 남긴 음식이 버리기 아까워 한꺼번에 부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을 때면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멘다. 어머니와 살 때는 어머니가 무얼 드시는지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화려한 쇼 윈도우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늙고 초라했지만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어떤 동질감이 내 속에 차올랐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그리움으로, 존경과 감사함으로 내 안의 그녀를 오래 오래 바라보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