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동안 한국에 다녀온 친구를 만나러 가는동안, 내 가슴은 마치 연인을 만나러 가는 사람 마냥 콩닥콩닥 뛰고, 그가 어떤 재미나고 새로운 한국 소식을 가지고 왔을까? 하는 기대하는 마음에 괜한 웃음이 자꾸 새어나와 혼났다. 주책이다 싶으면서도 진정이 안됐다. 그동안 길었던 퍼머머리를 짧은 단발로 산뜻하게 자르고 온 친구는 ‘서울날씨 장난이 아니였어!’하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리곤, 사람들 만난얘기, 날씨얘기, 학교얘기 등등 이것저것 얘기를 조금 풀어놓는가 싶더니 대뜸, ‘아휴, 서울에서 더워서 아주 혼났어, 거 있쟎아. 후덥지근하면서 사람미치게 하는 날씨. 샌프란시스코 날씨가 딱 좋아, 딱!’ 하는 것이다. 이 친구네 부부랑 우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에 와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만났는데, 이 곳 날씨가 너무 춥다면서 늘 우리랑 맞장구를 쳤었다. 특히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되어도 늘 자욱하게 끼는 안개와 줄기차게 불어오는 바다바람을 참 싫어했다. 그런데, 6개월만에 한국을 다녀오더니, 이 곳 날씨가 시원하고 상쾌해서 좋단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가 명성에 비해 볼 것도 없고, 물가만 비싼 도시라고 투덜거렸었는데, 이젠 이 곳이 아기자기하고 예술적인 도시로 보인다고 했다. 배신자!
난 초등학교 6년동안 아버지의 잦은 전근 때문에 전학을 5번이나 다녔다. 사람들이 우스겟소리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네’하는 그 삼천포에도 딱 5개월을 살았다. 이런 배경때문인지 나는 어느곳을 가든지 적응을 잘 하는 아이였다. 전학을 시켜 놓으면 하루만에 그 곳 사투리를 배워와 부모님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오히려 낯선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약간의 긴장감과 새로움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미국에 오게 되었을때에도 많은 이들이 나는 별 문제없이 잘 적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서 힘들어할 것 같았던 남편은 별 무리없이 잘 적응하고 지내는 반면 나는 물 떠난 고기마냥 허우적 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고 힘을 얻는 나 같은 사람에겐 만날 사람과 갈 곳을 다섯 손가락안에 다 꼽을 수 있는 미국사회는 너무 무미건조한 것 같다. 그래서, 후덥지근한 날씨와 교통지옥이라는 서울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고, 지하철 표 한장만 가지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기에 내겐 그렇게 가슴이 울렁거릴만큼 생기있는 도시인지 모른다.
사람이 한 명도 걸어다니지 않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깨를 부딪히며 바삐걷던 서울의 거리가 미치도록 그리워진다. 그러면 나는 또 남편에게 엉뚱한 질문을 한다. "오빠, 미국이 한국보다 좋은 살기좋은 이유 3가지만 대봐!" 머리를 벅벅 긁으며 떠듬떠듬 대답하는 남편의 세번째 답을 마저 듣지도 않고 나는 또 "그럼, 한국이 미국보다 살기좋은 이유 10가지만 대봐!"한다. 그리고, 그의 답을 듣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서울 한 복판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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