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손을 붙들고 오던 꼬마가 엄마가 되어 애기손을 붙잡고 올때 문득 세월이 이만치 흘렀음을 느낍니다”.
다운타운 차이니스 컬쳐플라자에 20여년간 한자리에 둥지를 틀고 고집스럽게 쿠쿠히 정육점이란 상호를 지키고 있는 허정길(58), 허종대(56)부부. 결혼생활 31년째에 접어든 이들 부부는 아직도 변하지 않는 부부애를 과시하며 오랜 단골에게 변함없는 육질좋은 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서 체신공무원이었던 남편 허씨는 집안의 가장이자 장남으로 홀어머니와 줄지어 있는 어린 동생들, 그리고 아내와 돌 지난 갓난아기를 포함한 대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하지만 박봉의 말단 공무원 봉급으로 생활하기에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그래서 1974년 온 식구가 도망치듯 이민을 온 것이 누이가 있던 바로 이곳 하와이. 매부의 소개로 지금은 없어진 로컬정육공장에서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상조차 해본적 없던 고기 자르는 직업이 탐탁치 않았지만 그당시 임금의 거의 3배 가까운 고임금에 힘든 일도 마다않고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지금은 소 한마리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예술적으로 분해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게 됐다.
남편 허씨는 “고된 일로 몸이 무척 힘들었으나 마음만은 너무 편하고 좋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바쁘고 고달픈 이민생활속에서 남편 허씨는 한인 친목단체인 태극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남편 허씨가 차가운 냉동창고에서 고기자르는 일을 하고 있을 때 부인 허씨는 프리스쿨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프리스쿨측의 주선으로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특전을 가졌고 내심 프리스쿨 운영의 꿈도 키워나갔다. 그러나 부인 허씨는 남편 허씨가 쿠쿠히 정육점을 인수하자 모든 걸 포기하고 남편의 일을 돕기 시작했고 세월이 훌쩍 20여년을 넘어버렸다. 10여년전 남편 허정길씨는 사업에 대한 욕심도 생기고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정육점에서도 탈출하고 싶은 심정에 사업 확장을 꾀했다. 그러나 갑자기 발생한 종업원의 안전사고로 남편 허씨의 사업확장 꿈은 일순간 허물어지고 그후 몇 년간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민 1세대가 다 그러하듯이 이들 부부도 생계를 위해 일에 매달리는 바람에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자녀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이들 부부의 노력에 대한 보답인지 연년생인 남매는 둘다 공부를 잘해 지금 아들은 전기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딸은 뉴욕의 도이치 뱅크에서 근무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좋다는 허씨부부는 “정육점 주위에 노인거주 아파트가 있어 단골 노인네들이 입선전을 많이 해주었다”며 “그런 분들이 이제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 세월이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한다”고 밝혔다.
20대 후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청춘을 바친 부부가 이제 50대 후반의 부부가 되어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인생 후배들에게 이민자의 색다른 삶의 희망을 넉넉하게 전하고 있다.
<정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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