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외국에서 오셨지요?
장갑처럼 생긴 이태리 타올을 왼손에 끼고 ‘퍽’하고 손뼉을 한 번 친 다음, 내 몸을 이태리 타올로 슬쩍 한번 문지르고 난 후, 밀어씨(때밀이 아저씨)가 내게 묻는 말이었다. 하와이의 강렬한 태양 덕택에 피부가 약간 거무스르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촌티를 내고 다닌것도 아닌데, 밀어씨 말씀은 내몸의 때가 한 두해 동안 쌓인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형 공중 사우나의 분위기가 금방 적응이 되지 않는데다가, 물기 묻은 나무 침대에 벌거벗고 누운채, 초 겨울 낙옆 같이 우수수 쌓이는 때를 바라 보고 있자니 피부가 시원해지는 만큼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은 간질거렸었다.
타임머쉰을 타고 새로운 시대에 낯선 곳을 온 것 처럼, 말은 통하지만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한국에 체류 하고 있던 내내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담배가게에 가서도 무슨 담배를 줄까요. 묻는 종업원에게 무슨 담배를 달라고 해야할지 잠시 생각하게 되고, 담배값은 얼마인지, 가판대에서 파는 신문은 얼마인지, 버스비는 얼마를 내야 하고 또 어떻게 내야 하는지....
영어를 알아 듣지 못하는 일본 관광객이 100불짜리로 물품대를 지불 하는 것 처럼, 나는 5천원짜리 지폐를 꺼내 놓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서울 시내 곳곳을 연결해 놓은 지하철을 어디에서 갈아타야 하는지 긴장과 내려야 할 곳을 놓칠것 같은 불안감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출입문 난간을 붙잡고 지하철 노선이 나와 있는 안내판만 뚫어지게 바라 보고 있었다.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무표정하게 생각에 잠겨 있거나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고, 신문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 전화기를 들여다 보고 게임을 하고 있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이어폰을 끼고 랩송을 듣고 있는지 발을 까닥거리는 젊은이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책을 읽거나 책을 손에 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아 전동차 내부를 한번 둘러 보아도 그런 사람은 그날따라 눈에 띄지 않았다.
출판사를 경영하는 강 선배가 한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읽지 않으며 그러니까 자연히 책을 사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에 접속해서 간단하게 알아 내면 그만이고, 또한 책을 많이읽게 만든다는 취지로 시작 한 대학의 논술시험도 학원에서 문학 작품을 줄거리와 작품의 해설의 강의를 듣고 대신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줄거리는 알아도 마차뒤로 슬쩍 보이던 로테의 얼굴이 자신을 바라 보았을 것이라는 저미는 베르테르의 가슴을 이해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할 것이고, 까뮈의 ‘이방인’의 줄거리는 알아도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 수도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살아서 그 다른 방식의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하는 카뮈의 무언의 냉소를 이해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들지도 모른다.
다리를 저는 한 아주머니가 전동차에 들어 왔지만,젊은이를 비롯한 모두가 각자의 표정을 바꾸지 않고 아주머니를 외면한다.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세사람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서, 보다 못한 한 노인분이 일어서며 말한다. ‘아주머니 여기 앉으세요’.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노인분이 일어서며 말한다. ‘두 정거장만 가면 내가 내리니까 여기 앉으세요.’ 하며 일어 선다.
좌석에 앉아 머리를 까닥 거리면 박자를 맞추는 이어폰을 낀 학생이 더욱 낯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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