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나 교회에서, 아파트에서 어쩌다 아이들과 마주칠 때면 조카 생각이 난다. 한국 나이로 여덟 살이 된 나원이, 일곱 살 시영이, 그리고 다섯 살 짜리 지후까지...조카들은 유난히 나를 잘 따랐다. 그래서인지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이모!’ 하고 부르던 조카들의 음성이 쟁쟁하게 살아나곤 한다.
며칠 전 작은 언니가 둘째를 임신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놀랍다’고 하는 것은 첫 아이를 낳은 후 무려 8년 만에 아기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임이라는 진단을 받고 걱정이 많았던 언니네 시댁은 잔치집 분위기라고 한다.
11월이 되면 동생댁도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산달이 가까우니 몸이 많이 무거워졌겠구나 싶다. 큰 언니 또한 작년에 아기를 낳아 한창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내가 미국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한 집에 한 명씩이던 조카가 배수로 불어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다들 첫 아이와 둘째 사이에 제법 터울이 져, 새 아기들을 만날 일에 벌써부터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언니나 올케가 딱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아직 아기를 낳고 키워보지 않아 세밀한 부분까지는 잘 모르지만 조카들을 돌본 경험상 육아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생아 때는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기초적인 일로 하루를 보내다 아기가 기고 걷기 시작하면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오직 아이를 따라 해바라기를 해야 한다. 아기가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24시간을 아이한테만 매달려 다른 어떤 일도 하기 힘들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큰 언니는 둘째를 낳고 신문을 끊었다고 한다. 펼쳐보지도 못한 채 쌓이기만 하는 신문 더미를 보는 것이 짜증스러웠다고 한다. 게다가 아기가 엄마한테서 좀체로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는 바람에 제때 식사를 하지도 못하고 화장실조차 마음놓고 가지를 못하는 형편이라고. 얼마 전엔 팔 관절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아기를 너무 많이 안아 생긴 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단다.
거미나 가시고기가 제 몸을 새끼에게 내어준다더니 사람의 어미도 그에 덜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한국같은 경우는 국가와 사회에서 담당하는 공공 육아의 몫이 빈약하기 짝이 없으니 그야말로 ‘엄마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형편이다. 그러고보니 한국의 출산률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이유 중에는 육아에 대한 부담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자의식이 강한 여성일수록 육아는 더 큰 스트레스가 된다는데,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나름의 일을 갖고자 하는 내 언니들이 아기에 매달려 몇 년을 꼼짝 못하고 지내겠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그녀들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는 천진한 아기를 부담스럽게 표현한 것 같아 조카들에게도 ‘쬐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저 모두들 건강하길 바라는 것밖에 내가 해 줄 것이 없다는 것도 이래저래 마음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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