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역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어야 제 맛이다. 계절의 맛을 알게 해 주는 먼 이방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침통한 ‘비창’의 절규. 그것은 죽음을 인식하는 인간에게만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숙명의 냄새이자 떠도는 영혼의 절규가 아닐 수 없다.
어딘가 우수에 차 있는 듯한 동양적 감수성… 마치 가을 장미, 시들기 전 이슬을 맞고 서있는 한 떨기 들국화 같다고나 할까. 차이코프스키의 여성적이면서도 풍부한 감성은 원색적인 서늘한 우수로 짙게 물들게 한다.
가을에 듣는 ‘비창’은 너무도 슬프다. 그러나 가을에 듣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D장조)’은 마치 코스모스와 같은 날렵함으로 가슴 한 구석을 서늘하게 적셔주는 또 다른 명곡이다.
바이올린은 여체와 흡사한 몸체에서 흘러나오는 센슈얼한 선율, 사람의 목소리와 흡사한 호소력 때문에 만인에 사랑받고 있는 악기이다.
역사상 바이올린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적은 드물었다. 악기의 왕은 피아노 였지만 피카소나 샤갈등 명화에 등장하는 악기들은 대부분 바이올린이 독차지하고 있다.
바이올린은 파가니니나 사라사테등 수많은 천재들을 탄생시켰고 명연주, 명곡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파가니니등 바이올린의 대가들이 남긴 곡들도 유명하지만 베토벤이나 브람스등 작곡가들이 남긴 곡들도 호평을 받고 있다. 파가니니, 사라사테등 연주가들이 남간 작품들이 기교적이고 연주자 중심으로 흐른데 비해 이들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풍부한 시상이 일품이다.
비니엡스키, 시벨리우스, 생상스등도 바이올린에서 명 협주곡을 남겼고 비발디의 ‘사계’는 새삼 거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협주곡의 대명사와 같은 곡이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챔버뮤직으로 통하는 ‘사계’를 제외하고는 주로 4-5곡 정도가 크게 대중화 되어있고 앞을 다투어 연주되고 있다. 그 중 최고의 인기 작품이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곡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과 더불어 너무도 유명하여 새삼 거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이 찬사 받고 있는 것은 선율미때문인데 아마도 차이코프스키만큼 바이올린을 하나의 동체처럼 느껴지게 하는 사랑스런 곡을 남긴 작곡가도 드물 것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중 최고의 곡은 브람스의 협주곡이었다. 물론 이는 독일 전통주의를 따른 형식미 때문인데 D장조로 된 이 곡은 바하 이후 독일이 낳은 최고의 아름다운 곡으로써 선율미 뿐 아니라 예술성, 스케일등 모든 면에서 찬사 받고 있다. 베토벤의 협주곡 D장조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움보다는 오케스트라의 협주가 일품이고 장엄한 교향곡처럼 들려온다는 점에서 찬사 받고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중 가장 웅장하면서도 주도 면밀한 형식미, 풍부한 악상등은 악성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명 협주곡으로 소문이 높다.
멘델스존의 E단조의 경우는 톡톡 튀는 눈부신 선율미가 인류의 영원한 유산으로 찬사 받고 있다. 그러나 대중성에 있어서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과는 가히 비교가 될 수 없는 작품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음악의 이론이 전혀 무시되고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첫 음부터 끝까지 시종 선율로 일관된 차이코프스키에게서 사실 형식미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타고난 선율의 귀재였던 차이코프스키는 마치 바이올린이 그 내부의 의지에 의해서 스스로 울부짖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유자재, 막힘 없는 흐느낌으로 영혼을 미역감게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1878년 스위스등을 여행하며 이 곡을 완성 당대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트 아우어라는 사람에게 바쳤다. 그러나 풍부한 악상의 이 협주곡은 이해 받지 못했다. 연주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은 이 곡은 1881년 아돌프 브로즈키에 의해 빈에서 초연되었는데 이때에도 비평가들(한슬릭)로 부터 혹평이 쏟아졌다.
우수에 젖은 듯 하면서도 톡톡튀는 선율은 정통성으로 따지자면 매우 반항적이었다. 이 때문에 발표된 직후 시장바닥에서나 연주하면 딱 알맞겠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북극의 고독하면서도 이국적 감상을 내포한 이 곡은 독일이 내세우는 형식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두우면서도 내면에 호소하는 관능미 충만한 이 곡은 곧 유럽을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최고 인기곡일 뿐 아니라 베토벤, 브람스와 더불어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빠르면서도 느리고, 서늘하면서도 격정이 넘치는 1악장은 전 악장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악장이다. 즉각적으로 빠져들기에는 다소 이질적이고 거절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이 곡은 마치 외로운 한 떨기 장미화같다고나할까. 어딘가 고독한 이방적인 요소, 북방이면서도 동쪽에서 불어오는 듯 동풍의 서늘한 신비야말로 차이코프스키의 거절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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