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운전을 한 것은 이민 초 고교시절 버스비도 없어서 내내 걸어다니다 시피하고도 대학에 가서 두 해나 지난 후였다. 중고차였는데 어찌나 고장이 잦은지 차안에는 항상 비상용 연장과 물통을 준비해두어야 했다. 게다가 운전 미숙으로 툭하면 박아대니 차는 안 찌그러진 면이 없는 상처투성이 고물 차로 변해갔다.
그러나 젊은 시절 갈곳도 많고 할 일도 태산이었으니 창피함은커녕 그 차는 나의 훌륭한 날개가 되어 주었다. 차에 올라타 손을 흔들며 백미러를 보면 엄마가 영락없이 길거리까지 나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연신 숙이며 열심히 기도하시는 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안보일 때까지 이어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차에 얽힌 무용담을 늘어놓으니 집안에서 조용히 기도하시기에는 역부족이셨나 보다.
프리웨이에서 갑자기 엔진후드가 바람에 열리며 시야를 가리는 통에 당황했던 코미디 같은 얘기며, 도움을 청했던 사람한테 도리어 지갑을 도난 당하질 않나, 엔진과열로 프리웨이에서 내린 곳이 마침 소방서 앞이고 잔디에 물을 주던 소방관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다는 무용담은 마침내 엄마를 아예 길거리에까지 따라나와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기도는 나를 안전막으로 둘러싸듯 보이지 않는 힘을 실어 주었는지, 아무리 삼중교차로 꼭대기에 차가 서더라도 침착함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
이제 고교 졸업반인 큰아들과 오랜 줄다리기 끝에 새차를 사기로 합의했다. 물론 처음 반년간은 내가 타던 미니 밴으로 운전경험을 더 쌓고 티켓을 받거나 그의 과실로 인한 사고는 몇달씩 차 열쇠를 압수한다는 조건으로 합의서까지 쓰며 안전운전을 다졌다.
새차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아는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책임을 지워주기 위해 다운페이 일부를 부담케 하는 등의 조항도 끼어 넣었지만 결국 대부분 부모 몫이 돼버렸다.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가 ‘자유’를 상징한다는 차를 타고 기뻐 훨훨 날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옛날 나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이의 안전운전을 위해 서성이며 기도한다. 나의 기도가 안전막이 되어 그를 보호할 수만 있다면 길에 뛰어나가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니 민/다이아몬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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