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행복한 만남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
삶이란 끝없는 만남이고 헤어짐이다. 살아가노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과 만나고 헤어진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 보수성이 강한 그녀가 막내아들 결혼시키고 두달만에 이 말을 꺼낸 것은 모진 풍파에 시달리면서도 항해할 수밖에 없었던 여정에 닻을 내리고 하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계적 피아노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졸업 후 서둘러 유학준비를 했다.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던 한 남자를 만나더니 어이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드디어 어느 날 “오늘은 내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며 다른 모든 날을 결정해 주는 날이다”는 몽테뉴의 말을 빌어 선전포고라도 하듯 유학과 피아노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한 남자를 만났고 음악 이상으로 한 생을 걸기에 충분한 상대라고 했다.
그 후 넉달만에 그녀는 피아니스트의 삶을 포기하고 부모님께 절통한 한을 남긴 채 미련 없이 한 남자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좋은 쪽으로 본다면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결혼조건이 아예 배제된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결혼이다. 근본도 모르고 혈혈단신인 남자를 사랑 하나로 인연 맺지 않았는가.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 듯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으나 결국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택하고 결정해야 하기에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힘차게 대양을 나를 수 있는 새가 날갯짓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둥지를 튼 것이 안타까웠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생명같이 여기던 긴 예술과 짧은 인생을 바꾸게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인생에서 행복한 만남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잣대로 그를 잰 것이다. 학벌이 인격과 동일한 줄 알았다.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마저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가 갖는 매력처럼 느꼈다. 그러나 정작 알아야 할 남편의 성격이나 깊이에 내재해 있는 사상, 또는 그가 살아온 삶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않고 서두른 결혼답게, 서서히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인간성의 문제가 가정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삶의 진로를 바꿀 만큼 황홀히 바라보던 애초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에서도 타협보다 비판이 앞섰다. 상대를 신뢰하고 배려하는데 인색했고 열등의식에 피해의식이 겹쳐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국제 무대를 꿈꾸며 두드리던 건반을 생계수단의 도구로 삼게 되었다. 그것이 견딜 수 없는 자기 모멸이기는 해도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성격 차이였다.
주변에서 이혼을 권했다. 그녀는 부모님께 불효할까봐, 자식들의 결혼 길이 막힐까봐 참고 견디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과감하게 생의 전반을 접기로 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 펴고 활짝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온 것이다.
해갈될 수 없는 갈증 속에서 침묵하며 보낸 세월 30여년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이다. 불같은 열정이었던, 상대를 관찰하는 안목이 없었던 간에 신중하지 못했던 선택에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짧은 한 세상을 지루하고 길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찰나적 인생이라고 표현하며 분초를 아끼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삶이 주어지건 그것은 오로지 본인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유숙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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