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서 가까이서]
▶ 정태수 편집국 부국장
미국을 정의하는 표현은 수없이 많다. 그중 하나가 통계사회다. 도대체 어디에 쓰려나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정도로 시시콜콜 많이 모은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아하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요긴하게 잘 써먹는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지난 주 토요일 플로리다 말린스를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려놓고 올해 농사를 끝낸 메이저리그에서도 통계의 위력은 유감없이 드러났다. 특정타자의 타율만 보더라도, 커리어 통산이니 시즌 기록이니 포스트시즌 기록이니 하는 것은 기본이고, 왼손 투수를 만났을 때 오른손 투수를 만났을 때, 1점차로 리드하고 있을 때 그 반대로 1점차로 지고 있을 때, 아웃카운트가 얼마일 때, 아웃카운트는 얼마이고 누상의 주자는 어디에 있을 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정도로 많은 경우의 타율이 해설자의 입을 통해 혹은 자막을 통해 쉴새없이 전달됐다.
아무리 야구가 기록경기라고는 해도 컴퓨터는 고사하고 만년필마저 제대로 보급되기 이전의 백년 넘은 기록들이 그때그때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걸 보노라면 부러움과 놀라움을 감출 수 수 없다.
그렇다고 한국의 어느 해설자처럼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미국의 힘이 느껴진다고 엄살을 피울 것까지는 없다. 일반 관중이나 시청자 입장에서 스포츠 관련 통계는 어디까지나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 역할에 그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정치나 행정 등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때의 통계는 더 이상 ‘알면 즐겁고 몰라도 슬프지 않은 장식용 숫자놀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네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각종 정책의 출발점’이다. 수준급 영어를 구사하는 40대 후반 직장인 A씨가 전화회사나 수도전기국 등에 전화를 걸 때 꼬박꼬박 한국어 구사 오퍼레이터를 찾는 이유를 들어보자.
그런 곳들이 무슨 인심이 좋아서 혹은 인구비례로 한국어를 쓰는 직원을 두겠습니까. 사소한 문의전화 한통까지 통계를 내서 한국어 통화 건수가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그들은 가차없이 잘립니다. 그러니 기왕이면 우리 한인들의 일자리 하나라도 더 만들어주는 데 보탬이 되자는 생각으로 일부러 우리말로 전화를 거는 것이지요.
하물며 각종 투표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보태고 말 것도 없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선거가 치러진 지난 7일 정흠 변호사가 들려준 말은 투표가 남의 잔치에 공연히 들러리를 서는 게 아니라 바로 ‘나 그리고 우리들의 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통계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한인들의 투표율이 낮다는 것은 한인들에게 돌아올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창한 정책을 수립할 때만 그런 게 아닙니다. 투표율같은 통계는 하다 못해 도서관에서 도서를 구입할 때도 유용한 참고사항이 됩니다. (투표로써)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누가 귀를 기울여주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이스트베이 한인봉사회에서 근무하는 남슬기씨가 소환선거 당시 했던 말을 들어보면 금방 그 해답이 짚혀진다.
시청같은 관공서에 가서 한인들을 위해 뭘 요구해도 ‘너희들은 투표에 참가하지도 않으면서…’ 뭐 이런 태도를 보이면서 진지하게 대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 문제라면 너나없이 박사급이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나돌 만큼 6,000마일가량 떨어진 한국의 정계 동향에 대해서는 일일이 꿰고 있다는 한인들이 정작 몸담고 사는 미국에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슬렁슬렁 포기해버리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혹여 투표방식이 유난히 까다로워 그렇다면 몰라도 그도 아니다. 귀찮거나 바빠서 투표 당일 정녕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으면 선거관리위가 미리 보내주는 우편물에 사인 한번 하는 것으로 부재자 투표를 할 수도 있다.
새삼 강조하건대 투표는 우리같은 소수계가 우리의 목소리를 가장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통로다. 그런 기회를 바쁘다는 등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날려버리는 건 자신뿐만 아니라 한인공동체로 돌아올 이익을 걷어차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지나간 소환선거는 걸렀다 치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선거나 투표에서는 빠짐없이 참여해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자. 이 바쁜 세상에, 게다가 개인간 집단간 지역간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되기 일쑤여서 그걸 듣고 조정하기도 바쁜 마당에, 어느 누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들의 몫’까지 알아서 챙겨주지도 않을뿐더러 또 그럴래야 그럴 수도 없음을 새삼 명심해야 한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샌프란시스코 시장 선거가 치러진다, 한인들의 무더기 ‘사표’ 행진은 지난 소환선거로 끝이 돼야 한다. 침묵하는 자의 몫은 없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