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현 칼럼]
▶ 박정현<가주정부 전산시스템 경영자>
요즘 나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별보기 운동-매일 밤 대충 집안 일이 끝나면 집앞에 나가 30분 내지 한 시간동안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며 맨손 체조와 뜀박질 운동을 한다. 우리는 한길에서 멀리 떨어져 사니까 이웃사람 눈길 의식하지도 않고, 신선하고 찬 밤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홀로 조용히 재정비할 수 있어 좋다. 보름달이 떳을 때는 교교한 달빛이 운치있고 초생달에는 별이 하늘 가득 초롱초롱 해서 좋다. 탑탑한 체육관에서 제자리 뜀질 하는 것하고는 별천지라 뒷뜰이 있는 사람들에게 권해보고 싶을 정도다.
진짜 알찬 보람중에 하나는 밤하늘에 흐르는 유성을 보는 것이란 걸 한 며칠 전 깨달았다. 정남쪽 하늘에 밝고 길게 흐르는 꿈같은 유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나는 재빨리 소원을 하나 부쳤다. 유성을 보며 그 빛이 꺼지기 전에 소원을 부치면 이루어진다는 서양 속담대로, 어린애같이 진지하게... 올해 안에 명혜를 꼭 만나게 해주세요 하고...
유명혜... 그애는 고일 시절의 단짝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친하게 지냈지만 아이들이 늘 그렇듯 진급이다 대학 진출이다 하더니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나는 가끔 그애 생각도 했지만 젊음의 끓는 소용돌이에 우리는 모두 휩쓸려 허우적거렸나보다.
지난 몇 번 한국에 갈 적마다 수소문해보았지만 내 소식통이 시원치 않았는지 소문만 들을 뿐 찾지 못했는데 우리 동기동창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에서 이 주전에 우연히 그애 연락처를 발견했다. 며칠을 벼른 끝에 겨우 통화가 되었다. 그애가 나를 기억할까 반겨줄까 하는 나의 망설임을 명혜는 단숨에 날려 보냈다. 뿐만 아니라 그애도 나를 찾아 보았다한다.
그후로 행복한 추억에 젖은 일 주일이 지났다. 어린 시절을 몽땅 다시 찾기라도 한 듯 감회가 깊었다. 나는 사실 언제나 떠나고 있었기 때문에 - 남해의 작은 도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미국으로- 그래서 동창회도 한번 참석해보지 못한 떠돌이었기에 친구들에 대해서만은 의리와 애착이 남다르다. 한 며칠 나는 인생에 있어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친구 - 친구란 여름 하늘 둥둥 떠가는 뭉게구름 같은 것이다. 아무리 허황된 꿈이라도 친구에게만은 터놓고 얘기할 수 있으며 구름처럼 더불어 떠 갈 수 있다.
친구 - 친구는 한 여름 동구 밭에 서 있는 고목과 같다. 보기만 해도 그 그늘 밑에 앉아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어 쉬고 싶은 그런 존재이다.
친구 - 친구란 끊임없이 졸졸 흘러가며 같이 가자 손짓하는 개울물이다. 한 시도 같은 물이 아니로되 기인 긴 세월이 흘러 변하고 또 변한 사람이 되었어도 나에겐 언제나 변함없는 그때 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친구이다.
친구 - 친구는 또한 손님이다. 인생이란 긴 여정에 출발도 행선지도 같지 아니하지만 언제 어디선가 홀연히 만나 기약없이 내 여정에 머무르다 함께 이정표를 찾던 귀한 여객이다. 갈 길을 너무 물어서도, 너무 짐을 지워서도, 너무 붙잡아서도 아니되며, 그냥 정성껏 고이 모셔 드려야하는 어렵고도 소중한 손님이다.
오늘 내 주위를 돌아본다. 나의 친구들은 다 어디 있을까. 나는 그들을 그렇게 모셨는가. 나는 그들에게 뭉게 구름이 되고 시원한 그늘이 되고, 촐촐한 시냇물이 되고 귀한 손님이 되었을까...
돌이켜보니 명혜와 나는 서로를 끔찍이나 아껴준 것 같다. 그 애는 무척 거리낌없이 발랄한 성격이고 나는 그 당시 말없이 책만 들이파던 꽁생원이어서 우리는 겉으로는 물과 불처럼 달라보였으리만 서로를 이해하고 음미했나보다. 지금 한 삼십년 지나 만나보니 그애는 놀라리만큼 차분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다정하고 진지한 태도는 여전하고 우리는 오히려 옛날보다 마음이 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엊그제 점심 무렵에는 혼자 호젓하게 멀리 산보를 갔다. 하늘은 높푸르고 산들바람은 서늘하고 가로수 잎은 살랑거리고... 문득 옛친구와 지금 산보를 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그 오랜 세월이 사무치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겠지만 내 맘속엔 영원히 어릿된 그리운 아이들...
그리운 이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진정으로 소중하고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 느낀다. 사람은 조만간 그리운 아이들을 찾아보아야 하리라... 우리는 모두 누구에겐가 그리운 옛친구. 그 옛 친구인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옛 친구
옛 친구
기약없이 흩어졌든 옛 친구
긴 봄 여름이 간 어느 가을날
다시 만났네
이제는 얼굴이 가물거리고
이름조차 희미하지만
밝은 미소 하나에
다정한 말 한마디에
우리는 세월을 잊는다네
옛 친구
옛 친구
낯설어도 친숙하고
늙어져도 어릿다운
이상한 인생의 반려자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가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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