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체포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79년 7월 권좌에 오른후 지난 봄 이라크 전쟁때까지 24년간 이라크를 철권 통치해왔다.
이라크인들을 이끌고 이란전쟁, 쿠웨이트 침공등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잇단 전쟁을 일으켰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던 후세인은 1937년 4월 28일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90여마일 떨어진 소도읍 티크리트 외곽에 있는 알-오자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후 9개월만에 부친을 여읜 그는 삼촌과 함께 성장기를 보낸다.
그의 이름 ‘사담’은 아랍어로 ‘맞서는 자’ ‘충돌하는 자’라는 뜻으로 후세인은 불과 31세였던 68년 자신이 속했던 바트당의 무혈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일약 2인자로 떠올랐다. 그는 석유 국유화(73년)를 성공시키고 보안군 책임자등의 지위를 맡으면서 자신의 권력 기반을 확대해 갔다.
이후 완전히 권력을 장악한 후세인은 ‘아랍의 지도자’로서의 야망에 보다 치중하면서 80-88년 이란과의 전쟁, 90년 쿠웨이트 침공등을 주도했고, 70년대 후반부터 이미 대량 살상 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후세인 체제는 초기부터 수천명의 반 후세인 인사들을 처형하면서 공포에 기반을 두고 실질적인 권력기관인 군과 보안국등의 요직을 자신의 고향인 티크리트 출신으로 채웠다. 티그리트 출신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배타적인 지위가 후세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만큼 그에게 충성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유엔의 경제제재등 국제적인 고립과 미국과 영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압박 속에서도 후세인은 탄탄한 국제정치기반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했으나 결국 9.11 테러 이후 강경파가 득세한 조시 부시 미국 행정부의 사상 유례없는 예방전쟁의 희생자로 올해 초 권좌에서 쫓겨났으며 부시 대통령의 가장 큰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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