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또 저물어간다. 불경기로 애를 태우고, 전쟁으로 어수선한 한해였지만 연말이 되니 활기가 돈다. 사랑하는 사람들, 고마웠던 사람들과 나눌 선물을 장만하느라 샤핑몰이 붐비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면서 웃음소리가 집안을 채우며, 일에 심신이 묶여 소원했던 동창, 친지들과의 모임으로 타운의 거리가 북적댄다. 선물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연말-삶의 활기는 나눔에서 나온다.
2003년은 한인사회로 보면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한해였고, 우리가 몸담고 사는 미국사회로 보면 이라크 공격으로 시작해 사담 후세인 체포로 일단락을 지은 전쟁의 한해였다. 후세인이 생포됨으로써 저항세력들이 구심점을 잃고, 이라크가 속히 평정을 되찾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기대가 실현 가능성을 높여 가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9.11 테러 때 제기되었던 질문, 미국은 왜 이렇게 미움을 받는가는 아직도 유효하다. 21세기 유일한 수퍼파워로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부를 누리는 미국이 주변 국가들의 질시, 아랍권의 증오의 표적이 되고 있는 현실을 이민 100년 역사의 한인사회는 특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못 가진 자의 소외감이다. 그들의 배고픔, 그들의 박탈감에 분노의 기름이 뿌려지면 세상은 평화를 잃고 미움과 불화의 도가니가 된다. 길게는 100년, 짧게는 30여년의 한인 이민사는 성장과 발전의 역사였다.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한인사회의 눈은 성취에 고정되어 있었다. 옆을 돌아보고, 주위를 살피며, 우리의 급성장이 어떤 소외집단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로 인한 뼈아픈 대가를 이미 치른 경험이 있다.
소외감을 녹일 수 있는 것은 관심이다. 관심은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보게 하는 통로이다. 그들의 시린 손발, 그들의 허기진 배가 내 몸 같이 느껴질 때 나눔은 가능해진다. 나눔의 울타리를 넓혀야 하겠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교회, 내 학교 …에서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관심의 눈길, 나눔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이 세상의 모든 소외된 자들, 모든 버림받은 자들을 껴안으려 애썼던 그리스도의 탄생이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서 재현되어야 하겠다. 나눔의 경계선이 아직도 가족이고 친구라면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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