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황제 목종이 당대의 서예 대가인 유공권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붓을 잘 쓸 수 있겠는가?” 다른 말로는 “어떻게 하면 글(서예)을 잘 할 수 있겠는가?”였다. 유공권은 “심정필정(心正筆正)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서예의 집필법의 기본이나, 운필의 기본인 중봉과 역입평출 등등 서법을 모두 생략하고, 유공권은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게 된다”고 대답했다.
이에 목종은 얼굴 색이 변하며 깜짝 놀라고, 정신을 차려서 비로소 붓을 쓰는 방법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동양사상은 그 근원을 마음에 두었다. 서예를 하려면 당연히 좋은 스승을 찾아서, 고전을 섭렵하고 독첩을 많이 하고 좋은 지필묵을 구하며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 중봉, 역입평출 등등의 서법을 익혀야 한다.
그 위에 ‘바른 마음’이 바른 글이 되는 전제가 된다. 서예뿐이 아니라 무릇 모든 학문과 장인정신에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 궁극적으로 이 제자의 바른 마음, 즉 인간됨을 먼저 보고서야 학문과 기술을 전수해 주는 것이 바로 동양적인 사상이다.
이런 심오한 교육법이 사회에 책임을 지는 지성과 지도자를 배출하는 근간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해서는 현대 서구의 교육법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다룬다. 누구나 마음은 바르다는 가정 하에 지식을 전수시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성적은 괜찮은데,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사람됨됨이가 못 되었다고 입문시키지 않았다가는 “인간 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불공정, 인권유린” 등등의 온갖 죄목을 붙여서 그런 스승은 퇴출시키는 것이 현대의 교육현장이다.
인간됨됨이에 관여 없이 빨리 많은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주는 데만 급급해 왔는데, 이런 지식의 보급과 보편화가 현대의 불안을 급증시켜 왔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차라리 무식하거나 게으르기라도 해야 사회에 도움이 된다. 바르지 못한 마음에 부지런함까지 덧붙여서 컴퓨터 과학 지식이 주입되니, 해킹, 개인정보 도용과 컴퓨터 바이러스가 기승이다.
핵 기술과 생화학 기술이 마음이 바르지 못한 자에게도 공평하게 공급되니 인명살상에 더욱 쉬워진다. 테러리스트에게 들어가서는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인명 파괴에 쓰이게 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지위를 차지하고 지식을 습득하며 재물을 획득해서 사회에 횡포를 부려대니 사회는 더욱 말세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에 대한 유일한 대책으로 법을 강화해 보지만 그릇된 마음에 가미된 지식과 기술의 횡포를 법으로만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바른 마음은, 좋은 인간 됨됨이는, 상당부분이 선천성이다. 창조주가 주시는 것이다. 그 위에 올바른 교육과 좋은 환경을 통해서 바른 마음이 바른 행위로 증폭되게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현대 교육 현장에서는 바른 마음을 구분해 낼 수도 내어서도 안 되게 되어 있다. 당연히 ‘바른 마음교육’이란 단어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등이란 잣대로 재는 세상은 실제로 평등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는 역설이 현대의 딜레마이다.
붓을 바르게 쓰는 데도 바른 마음이어야 하거늘 교육을 바르게 시키고 가정을 바르게 이끌며 사회와 국가를 바르게 이끌어 가는 데야 말해 무엇하랴!
새해 아침 붓을 바르게 들어본다. 심정필정이라! 역으로 ‘붓이 바르면 마음도 바르게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필정심정(筆正心正)되 되기를 기대하며 붓을 세워 들어본다. 심정정정(心正政正)도 심정사정(心正社正)도, 심정교정(心正敎正)이란 새 숙어도 생길만하다.
정균희/UCLA 정신과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