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교수 UC 버클리서 특강
서울대학교 박태균 국제대학원 교수는 11일 UC버클리에서 ‘다른 접근, 같은 목적’을 주제로 1950년대 한국경제사에 관한 강연회를 가졌다.
UC버클리 내 한국학 센터주최로 열린 이날 강연회에서 박 교수는 50년대 한국 경제를 ‘자유 시장 시스템’, ‘국가 주도론’, ‘사회 민주주의경제론’으로 분류하고 당시 정국과 이에 맞물린 한국경제를 분석했다.
박 교수는 1950년대 한국 경제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던 ‘식민지 경제’였다고 정의하고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단일국가로는 가장 거대한 규모의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었다며 예산의 40%가 미국의 경제원조였다고 설명했다.
일제 지배 하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고 당시의 시대상을 서술한 박 교수는 당시 미군정은 일본식 경제운용 체제를 종식시키고 한국경제를 재구축 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해방을 맞으며 한국경제는 일본경제체제의 영향권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시장 시스템으로 편입, 미군정은 공산혁명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하고 새롭게 해방된 한국경제의 안정을 위해 무상원조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 자본가와 기술자들이 한국을 떠난 이후 한국의 산업생산은 사실상 붕괴했다고 박 교수는 밝히고 대지주 등 기업농의 몰락과 함께 공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집단이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6.25와 함께 분단된 한반도는 1960년대 말까지 북한이 공업부문 등 기술력에서 남한에 비해 앞서있었다며 당시 한국은 미국의 경제 시스템을 모방하자는 ‘자유 시장 시스템’과 국가가 적극 나서서 산업 등 전반적인 경제를 이끌어 나가자는 ‘국가 주도론’,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를 모방한 ‘사회 민주주의 경제론’ 등을 표방하자는 3가지 경제주의로 분류됐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당시 자유 시장 시스템의 수용은 월간 ‘사상계’를 중심으로 한 진보주의자가 주장했으며 ‘국가주도론’은 박희범, 박동안, 조문환 등이 ‘사회주의 경제론’은 조병암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라며 특히 박희범 등 3인의 국가주도론자는 나중에 박정희 정권의 경제 자문으로 활약하면서 박 정권 경제의 주도세력으로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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