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자/수필가
이번 밸런타인스 데이는 토요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왜 아니겠어, 최소한 와이프한테 긁힐 염려가 없으니 천만 다행이지.
며칠전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던 어느 찻집에서 청년 둘이 앉아 나누는 대화를 흥미있게 들었다. 홀 안이 비교적 한산한 편이어서 그들의 이야기가 잘 들렸다. 지난해 아들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서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회사 여직원들이 밸런타인스 데이 근무처로 배달되어오는 꽃에 무척 신경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마치 남편, 혹은 연인의 사랑의 비중이 꽃다발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 것처럼.
큰 꽃다발을 받은 사람은 남편의 관심과 사랑이 꽃의 크기만큼이나 되는 듯 행복해 하고 작은 꽃다발을 받은 사람은 시무룩해져 있더라고 한다. 밸런타인스 데이 증후군은, 부부나 연인들이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날임에도 심심찮게 사랑 확인의 언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음을 본다.
친구 한분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남편으로부터 꽃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우리세대 남편들의 공통점인 표현 없는 무뚝뚝함. 어느 해였나 미국에서 생활한지 20여년이 지났기에 좀 달라진 것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평소에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었던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이 밸런타인스 데이인데 제게 뭐 줄 것 없으세요? 그러자 남편은 밸런타인스 데이 같은 소리하고 있네, 우리가 애들이야?
어떤 기대를 하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막상 무참하게 끊어 내니 많이 섭섭하더라고 했다. 다른 친구의 남편은 돈이 5달러밖에 없어 한송이에 6달러하는 장미를 사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문을 닫으려고 준비하는 꽃집에 들어가 겨우 한송이를 사다가 아내에게 주었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밤늦게 들어온 남편으로부터 그간의 사유를 들은 친구는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나더라는 말을 했다.
이맘때면 초컬릿 상점 앞에 길게 줄이 이어지고 꽃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꽃의 수난시대가 온 것이다. 2월 중순에 결혼식을 올렸던 한 친지는 밸런타인스 데이로 인해 꽃이 귀해 무척 애를 먹었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숨을 쉬어야 살아가듯이 누구나 어떤 형태이건 서로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잃어서는 안되는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번민과 고뇌를 해결해 주고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 준다. 사람에 따라 빛깔과 향기는 다르지만 그 자체만은 세월이 바뀌어도 영원 불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척도로 재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곧 마음인 것이다. 위대한 희망의 실체가 사랑이기에 사랑 한모금에 꺼져가던 생명이 살아나고, 사랑 한모금에 상처를 받고 절망하지 않는가. 비록 친구 남편은 돈이 없어 한송이 꽃밖에 살수 없었지만 그 꽃을 받은 친구는 오리려 한송이에 하나 가득함, 유일함을 느꼈고 무엇보다도 남편의 정성이 깃든 마음을 받았기에 감동이 컸던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의 고뇌처럼 달콤한 것이 없고, 사랑의 슬픔처럼 즐거움은 없으며, 사랑의 괴로움처럼 기쁜 것은 없고, 사랑에 죽는 것처럼 행복은 없다고. 어찌보면 역설로 들릴지 모르나 그만큼 사랑은 소중한 것이리라.
살아 갈수록 우리들 가슴이 삭막해 지기 쉽다. 고도로 발달되는 첨단 문명 앞에서 순수한 사랑, 순수한 인간성이 날로 제 빛을 잃어간다 신비롭게 유지되어야 할 사랑이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지고 물질적이어서, 물질을 얻고 철학을 잃어버린 시대처럼 생각된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랑으로 우리들 삶의 나날을 충만 시킬 수 있다면 각자의 삶은 사랑의 축복으로 넘치게 될 것이다.
가슴을 적셔주는 한송이 장미, 그것은 진실한 마음이 담긴 정성이 있었기에 더욱 귀하다는 것을 의미 있게 새겨보는 밸런타인스 데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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