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장난이 아닌 듯 싶었다. 전혀 딴 사람인줄 착각했을 정도다. 목이며 코며, 꽉 쉰 목소리로 지지직거리는 전화기를 붙들고 열심히 내게 설명하고 있었다. 지난번 동양선교교회에서 음악회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몸이 아픈 가운데서도 행사 이것저것을 챙겼던 다혜 어머니, 다혜는 선교회에 들어온 지, 6개월이 넘었다. 물론, 약과 거듭되는 가출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혜가 들어오기 7개월 전에는 다혜의 아버지가 수감생활 대신 선교회 생활을 했었고, 지금은 다혜의 13세 된 동생도 선교회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온 가족이 다혜엄마만 빼고, 약물과 그 밖의 나쁜 습관에 사로잡혀있는 상황이었다. 집안에 한사람이 문제를 일으켜도 심장이 멎을 듯이 고통스러운데, 다혜 어머니 가정은 아들, 딸, 남편까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죽고싶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괴로움과 눈물로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약물에 다 빼앗겨버리고, 단 일분, 일초라도 버틸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다혜 어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환하고 밝았다.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니, 약간 모자라는 사람인가? 어떻게 저런 환경 속에서 저렇게 생활할 수 있지?’ 의아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더욱이 긴 생머리에 늘씬한 키. 누가 보아도 제대로인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시집을 가도 몇 번은 더 갔을 만 한데...
흔들림이 없이 언제나 다혜와 동생에게 선교회에서 시키는 데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며, 선교회의 지침을 어김없이 따르고 있었고,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이를 꽉 물고, 아픈 것도 참아가며 이곳 저곳 뛰어다니면서 형편없이 무너진 경제생활까지 책임지는 다혜어머니를 이제는 존경하게되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뛰어다니면서도 선교회 세미나며, 행사장에 빠짐없이 나타나 도움을 주시고, 자신의 친구가 남편과의 잦은 다툼으로 속상해서 울며 하소연한다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러 늦은 밤까지 함께 있어주는 다혜 어머니, 남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목구멍을 차고 올라오지만 행여 남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 그냥 하고싶은 말을 꿀꺽 삼킨다는 그분의 얼굴은 세상에서는 힘없고, 희망 없는, 가난한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남에게 위로 받고 동정 받아야 마땅한 처지지만, 자신의 환경은 아랑곳없이 다른 이들을 걱정하고 기도해주며 함께 아파해주는 그분의 모습에서 나는 작은 예수를 만난 것이다.
며칠전에도 다혜 어머니는 내게 오셨다. “목사님, 제 친구를 좀 위로해 주셔요. 요즈음 남편하고 이혼문제로 많이 힘들어해요. 너무나 가슴이 아파요. 정말 좋은 친구인데. 그렇게 외로워하고 슬퍼하는 것 보니까 제 마음이 무겁네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에게서 나는 부끄럽고, 죄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기독교인이고, 믿음이 있다는 기준을 나는 어디에 두고 있었는가? 남들에게 잘 보이고, 다른 이들이 감동할 만한 일을 적당히 할 때, ‘아,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기준으로 평가했다. 웬만큼 선한 일에 물질도 좀 내고, 가끔 시간이 날 때 봉사도 하는 정도를 ‘그만하면, 그 정도면’으로 모든 것을 적당히, 그리고 크게는 아니지만, 약간의 생색나는 것을 우선 순위로 삼았지는 않았던가! 그랬던 나의 굳어져가던 그 기준이 ‘쩍’하니 갈라지는 순간이었다.
다혜 어머니! 정말 가난한 자이며, 누구에게든지 위로 받아야 마땅한 그 분의 위로와 사랑이 아마 적당히 이기적인 봉사와 희생을 요구하는 이 세상에 가장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확신한다. 그 분의 그러한 마음이 있기에 다혜와 동생과 남편이 반드시 회복되는 삶으로 U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영호 목사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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