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이화씨. 소리를 잃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나누기 위해서다.
‘잃어버린 소리’찾아줍시다
청각장애아 부모모임 만들어 상부상조했으면…
팥색, 녹두색, 다홍색, 쪽색 등 고운 색상의 한복감이 켠켠이 쌓여있는 이화고전방에 들어서면 단아한 이미지와 시원한 웃음이 인상적인 한복연구가 이화(40)씨를 만나게 된다.
4대째 한복점 집안이라는 가업을 고수해 이화고전방을 시작한 이씨는 문을 연지 9년만에 한인타운의 전통 한복점으로 자리잡았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비즈니스도 잘하고 중매도 잘 서는 이씨로 인해 이화고전방은 혼수준비에 바쁜 어머니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자연스레 혼담을 주고받는 중매쟁이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씨와 격 없는 대화를 주고 받다보면 이씨에게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이 하나 있음을 알게된다.
“좀더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하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있죠. 겉으로 보기에 청각장애인은 정상인 같아 보이지만 장애는 장애예요. 아이와 의사소통을 하려면 수화를 배워야 하는데, 수화가 만국 공통이 아니거든요. 한국어 수화가 다르고 영어수화가 또 달라 영어 배우랴 수화 배우랴 상당히 힘들어요”
이씨의 아들 벤자민(10)은 심한 난청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들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씨는 세 살이 되자 말 배우는 게 늦어도 너무 늦다고 걱정하다가 병원을 찾았다.
청각테스트를 실시한 의사의 입에서 아들이 청각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다. 앞이 막막해진 이씨는 그 길로 아이와 함께 기도원을 찾으며 자신의 무지를 탓했다.
“박수를 치거나 큰소리로 부르면 아이가 뒤돌아보곤 했으니 누군들 청각장애가 있다고 생각했겠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소리를 듣고 뒤돌아본 게 아니라 주위의 진동을 느껴 뒤돌아본 것이었죠. 요즘은 아이가 태어나 6개월이 되면 무조건 청각테스트를 받게 돼있지만, 그 시절 전 아무 것도 몰랐어요”
그래도 청각을 완전히 잃은 것이 아니어서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게 했다. 실청 되기 전에 전화벨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등 세상에 ‘소리’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또, 립싱크를 통해 말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보통 아이들이 100번쯤 듣고 언어를 습득한다면, 이씨의 아들은 3,000번이 넘게 반복해야 겨우 따라하는 정도였다.
엄마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야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한마디 내뱉는 아들에게 이씨가 가장 먼저 가르친 단어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 ‘플리즈(Please·주세요)’였다. 소리를 잃은 채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플리즈’라고 또박또박 말할 수 있게 되자 이씨는 아들을 혼자 마켓에도 보내고 식당에서 음식주문을 하게 했다. 듣지 못한다고 해서 혼자서 살아갈 힘마저 잃어버리게 할 순 없었다. 열 살이 된 지금 이씨의 아들은 청각장애가 있지만 버뱅크의 토탈 커뮤니티 스쿨을 다니며 일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한복점을 해오면서, 유독 청각장애가 있는 이들이 알고 찾아오는 것도 아닐텐데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예상외로 주변에 청각장애인이 많음을 느낀다는 이씨. 엄마 손을 붙잡고 온 아이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혹시 따님에게 청각 장애가 있어요?”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어머니를 보아왔다며 “내 아들이 그러니까 느낌으로 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은 보름달이 뜰 때 생쥐를 잡아 배를 가르고 쓸개를 떼어낸 후 소주에 담갔다가 귓속에 넣으면 청각이 돌아온다는 민담을 믿고, 실제로 쥐를 100마리나 잡았던 어머니의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씨는 ‘청각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모임’을 만들고 싶어한다. 복지혜택이 발달한 미국에 살면서 부모들끼리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힘들어도 수화도 같이 배우며, 소리 없는 희망을 나누기 위해서다. (213)252-0022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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