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수<화가>
사람은 추억하며 그리워하며 사는가 보다
밀브레 언덕위에 있는 우리집에서 내어다 보는 전경(view)에는 묘한 변화가 있다. 만조 때에는 베이(bay)가 바다 같아 보이고 간조 때에는 베이가 강물 같아 보인다. 그 넘어 육지에 있는 오클랜드와 헤이워드는 그때 마다 섬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낮은 산 같아도 보인다. 짙은 안개라도 끼면 육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안개이며 그냥 하늘이다. 하늘과 안개와 구름의 변화로 인한 실재와 허구와 착시 사이에서 날마다의 느낌이 달라진다. 마당에 있는 누에 고추 같이 생긴 작은 수영장이 연못 같아 보여서인지, 마당을 가로지른 전깃줄에 쉬어 가기 좋아서인지, 동네에 무성한 나무들이 탐이 나서인지 종류 다른 새들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전깃줄을 타고 예쁜 모습으로 잽싸게 지나가는 다람쥐는 곡예사 같다. 밤에 반짝이는 불빛은 뿌려 놓은 보석 같고, 여명부터 찾아오는 붉고 찬란한 하늘은 시간따라 변화한다. 구름이 낀 아침 하늘은 그 반사가 눈부시다. 석양에 반사되는 유리창들은 ‘피안의 행복’을 상기 시켜준다. 나는 지치지 않는 이집에 앉아서도 오후가 되면 반년전에 떠나온 옛집을 그리워한다.
안방과 침상. 그 낮고 넓은 창문을 그리워한다. 침상의 내 자리에 누우면 뒷 동산의 나무가 창문 가득히 메워오고 나무들 사이로 하늘만 조금 비친다. 마치 깊고 깊은 산속에 누워 있는 것 같다. 그 착각이 너무 좋아서 오후면 한 두 시간씩 그 곳에 누워서 책도 읽고 명상에도 잠기고 추억에 잠겨 옛 친구를 그리워했다. 가까운 사람이 찾아오면 억지로 떠밀면서 눕혀보고 ‘참 그러네’ 하는 감탄을 즐거워했다.
예닐곱 활엽수 사이에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일조 때문인지, 잎새 반짝이는 활엽수를 닮아보려하는건지 가느다란 몸둥이에 키만 자라 있는 것이 도무지 소나무 같지가 않다. 서툰 영어로 미국생활에 익숙하려고 애쓰고 있는 나와 닮은 것 같아서 가끔 혼자서 웃어보기도했다.
요즈음은 참 자주 옛날을 회상하고 옛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똘똘이의 모험’에 감탄하며 안델센 동화집을 함께 읽었던 초등학교때 단짝 영아를 그리워한다. 오랫동안 단짝이 되어준 조각하는 차순이를 그리워한다. 전람회를 같이 다니며 예술을 논하고, 미술사를 공부하며, 방향을 찾으며, 인생이 영글어 갈 때 늘 함께 했었다. 지금의 내 단짝은 백발이 성성한 내 남편이다 43년간 함께한 지난 흔적들을 그리워 하며 얘기하며 어디를 가나 함께 다니는 다정한 벗이다.
홀로서기 무섭고, 나서기 두려워하고, 결점 많은 나를 내 단짝들이 늘 함께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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