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명 <엘리콧시티, MD>

옛날 덕유산 지리산 공비가 출몰하고 민생고가 극심하던 시절, 나의 아버지가 거창읍 친척집에 하룻밤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땐 불만 끄면 쥐들 세상이 되어 누구든 천장 위로 찍찍거리며 뛰어다니는 쥐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한참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나의 아버님이 갑자기 “‘뺀찌’ 가져와라”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서 보니 새끼고양이 만한 큰 쥐가 도망가는데 엄지발가락에서 피가 철철 나더라고 하셨다. 꿈속에서 어떤 놈이 자기 엄지발가락에 큰 왜못을 들이박아 하도 아파 그것을 빼려고 “뺀찌를 가져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런데 큰 쥐가 자기 엄지발가락을 물어뜯고 있었으니 현실이 꿈속에 나타난 경우였던 것 같다.
어릴 때 나도 늦게까지 오줌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었는데 꿈속에서 높은 절벽에서 무중력 상태로 떨어지는 꿈을 꾸던가 아니면 시원하게 물 속에서 소변보는 꿈을 꾸면 영락없이 큰 요에 대한민국 지도를 그리곤 했었다. 이 경우도 꿈과 현실이 묘하게 연결된 경우라고 본다.
한번은 아버님이 꿈속에서 시골 장터를 가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나셨다고 하는데 “아버님 장터엔 웬일로 가십니까”하고 여쭈니 할아버지 말씀이 “내 집에 하도 소나무 뿌리가 들어와 대장간에 낫 베푸러(sharpening) 간다”고 하셨다고 한다. 하도 이상해 아침에 새벽같이 할아버지 산소에 가보니 실제로 작은 소나무들이 산소 위 여기저기 크고 있어 뿌리째 뽑아줬다고 하셨다.
삼국지에 보면 조조가 한겨울에 토성을 쌓아놓고 적군과 싸우는데 쌓기가 무섭게 적들이 쳐들어와 토성을 허물어 버려 낭패를 보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물을 부어가며 토성을 쌓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흙이 콘크리트처럼 얼어붙어 철벽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태조 이성계 또한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들어가는 꿈을 꾸어 어떤 스님에게 물어보니 서까래 세 개를 지고 가면 그것이 곧 임금 왕(王) 자가 되니 임금이 될 징조라고 해몽해 주어 자기 꿈을 잘 해석해 주었다 하여 나중에 왕이 된 후 그 절을 크게 중건하고 석왕사 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전해진다.
꿈은 때로 전연 앞뒤가 맞지 않고 엉뚱한 개꿈일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엔 묘하게 현실과 일치하고 또 어떤 경우 섬광같이 미래를 예시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번에 나는 큰 수술을 받았는데 그 날밤 갑자기 서울에 계신 연로한 누님께서 꿈속에 모든 조상님들이 다 보이고 하도 꿈자리가 뒤숭숭해 전화를 했다고 했다. 꿈은 참으로 신비 그 자체인 것 같다. 대수술을 받고 비몽사몽 중에 나도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한도 끝도 없이 깊은 숲 속을 헤매다 간신히 누구를 만나 집을 찾아오는 꿈을 꾸었다. 그 깊은 산 속 사람 하나 겨우 걸어다닐 산 오솔길에 그림자 같은 버스가 오고 나는 버스문짝 손잡이에 매달려 간신히 무릎으로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를 보고 삶의 희망을 갖고 다시 살아난 노인처럼 나도 그 버스를 탈 수 있었음이 하느님이 내려주신 생명줄을 붙잡은 것 같은 삶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조금씩 전신으로 퍼져감을 느꼈다.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애쓰신 신부님, 수녀님, 교우, 친구, 친척 등 주위 많은 분들과 성공적인 수술과 치료를 해주신 의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