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하게도 일제의 문화통치시기에 농악경연대회는 다소 많이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풍물이 함께 하는 풍물이 아니라 경연장의 마스게임화 되는 시효가 되었으며, 이런 행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모순을 갖게 했다.
미군정시대는 직접적인 억압보다 가치관이 뿌리채 흔들리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미국의 저질 대중문화가 침투해 들어오고 그들의 비속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무차별적으로 민족의 삶을 유린하게 되었다. 더구나 새마을운동과 유신으로 이어지는 독재시대에는 근대화의 허울아래 우리의 것은 촌스럽고 비과학적이며 버려야할 구시대적인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마을 어귀마다 세워져 마을과 그 마을의 구성원들을 수호해주던 서낭당이며 장승들이 모두 불태워졌고 풍물굿 역시 미신으로 낙인찍혀 금지되는 등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70년대 들어 대학가에서 시작된 탈춤부흥운동은 민족예술의 부흥을 꾀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운동이다. 이 흐름은 급속도로 호응을 얻고 지지를 받으며 곧 맹렬하게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나갔으며, 탈춤뿐만이 아니라 지방마다 전승되고 있던 전통예술들이 발굴되고 전수되었고, 그 동안 천대받던 우리 굿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과 연구가 이어지며 내 것을 찾는 진정한 민족문화 부흥운동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옛것에 대한 복고적인 회귀가 아니라 줏대없이 외래문화에 휘둘리던 우리자신을 되찾고자 한 하나의 혁명이었다.
풍물 역시 이 흐름에 힘을 받아 각 대학에 풍물패가 구성되어 전국적으로 확산일로에 섰고, 직장인, 주부, 어린이들 할 것 없이 펴져 나간 풍물인구의 저변확대는 무서운 기세로 그 기반을 넓혀나갔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등장한 사물놀이는 한층 고조되어 가고 있던 풍물굿에 대한 관심을 그야말로 시원하게 폭발시키는 뇌관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혹은 다른 바탕 위에서 우리 시대의 풍물굿을 일구어 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속에서 새로운 풍물굿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풍물은 과거를 종합하고 현재를 다지며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일찍이 어느 민족도 가져보지 못한 독특하고도 우수한 예술형태인 풍물굿은 그야말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의 한 장르이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본류 사회를 극복하지 못한 이민자의 삶을 살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때 풍물굿에 서린 정신들로 이 피폐한 나라의 가치관을 새로이 정립시키는 중심이 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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